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곳 진주성
“임진년 후퇴는 진주성 공략 실패에 있다. 철저히 공략하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너지면 전라도와 서해를 내준다. 철통같이 막아라” - 김시민 장군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봤을 수학여행. 놀이공원만 3일 줄창 있어도 부족할 시간 당시엔 깊은 산속 절을 찾아 혹은 멋있어 보이지 않는 건물 앞에서 단체로 얼굴만 내민 채 왜 사진을 찍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수학여행의 기억은 숙소에서 보낸 시간만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물론 어디서나 우등생임을 자처하듯 펜과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열심히 기록하는 학생도 꼭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에 와서야 눈만 감지 말자는 생각에 임했던 단체사진의 배경이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 중 하나로 목적지에 대한 사전지식의 유무가 아닐까.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서생포 왜성 다음으로 찾은 진주성 역시 알면 알수록 발걸음을 쉬 떼지 못하는 곳이다. 수백년간 전투를 치러오면서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만 수만 명에 이를 정도로 아픔을 간직한 곳 진주성. 현재는 공원으로 꾸며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좌 : 김시민 장군 동상, 우 : 북장대로 올라가는 길
공원처럼 꾸며진 성내
임진왜란의 아픔을 품고 있는 성내(城內)
진주성은 둘레 1.7km로 성내에는 임란시 의병을 모아 싸운 제말과 제홍록 장군의 충의를 새긴 ‘쌍충사적비’, 진주성에서 준설한 제장, 군졸들의 충의를 새긴 ‘촉석정충단비’,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전공을 새긴 ‘김시민전성각적비’, 7만 민, 관, 군의 충혼을 위령하기 위한 ‘진주성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김시민 장군과 함께 임란 때 함께 순절한 분의 신위를 모신 ‘창열사’ 등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곳으로 이곳저곳 볼거리가 상당히 많이 있다.
성내로 향하눈 문은 촉석문, 서문, 공북문 총 3개로, 이중 2002년 준공된 공북문은 진주성의 주된 문으로, 임진왜란 시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장군 동상이 문 뒤에 세워져있다. 2000년 1월 1일 새천년 첫 달 첫 날에 세워진 동상은 그 기념비에 ‘나라와 겨레를 있게 한 그 매운 충절을 만세에 전하고자 함’이라 새겨 진주성의 존재가치를 한번 더 되새기게 한다.
동상 옆에 위치한 북장대(도문화재 자료 제4호)는 군사건물의 모범이라 할 만큼 잘 건축된 망루(망을 보거나 먼 곳을 보기위해 세운 건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 함락으로 부서진 것을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장대 외에도 진주성 안에는 예로부터 진주관찰부, 경상남도관찰사 감영, 경상남도 도청이 존재했었지만 일제시대 모두 헐렸으며, 1969년 진주성복원사업을 시작한 이래 많은 건물들이 중수 또는 철거되어 현재는 진주성 공원으로 불릴 만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꾸며져있다.
성내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 유물들이 많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인 국립진주성박물관이 있다. 이곳엔 임진왜란실, 기획전시실, 3D입체영상관 등이 있으며, 보물 제885호 현자총통과 이순신 장군의 친필 서한 등 3,500여점이 소장돼 있다.
촉석루로 성벽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총통(천자, 지자, 현자)이 실물 그대로 만들어져 진열돼 있다. 이 포는 동차에 장착하여 사용하였는데 길이 2.3m의 대장군전과 새알처럼 생긴 철환 100개를 발사할 수 있으며, 사정거리가 천자로 천자총통은 천자(약 900보, 1,136m)를 날아간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총통이 진열된 곳을 지나면 걸어다니느라 흘린 땀을 식히기에 그만인 진주성의 대표적인 명승지 촉석루가 보인다. 남강은 물론 주변 경치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어 임란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과거시험을 보던 장소로 이용 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촉성루 바로 밑으로는 의암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으며, 우측에는 논개의 사당인 의기사가 있다.
좌측상단 : 예전 논개 영정, 우측상단 : 최근 봉인된 논개 영정
의암
한때 사당안에 있는 논개의 영정을 두고 진주 시민들 사이에선 친일 부역 화가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논개의 민족혼을 훼손하므로 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시 그릴 경우 당시의 기품과 우아함을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영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결국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전통영정기법으로 과학적인 고증과정을 거쳐 그린 영정으로 교체됐으며, 논개의 열 손가락에 가락지가 선명이 그려진 이 영정은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돼 2008년 5월 23일 봉인하였다.
촉석루 밑 의암은 높이와 너비가 약 3m 정도 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촉석루 쪽 암반과 붙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절벽에 붙으면 나라에 큰 재앙이 난다는 전설을 가져 위(危)암이라고 했다가 논개로 인해 의(義)암으로 바뀌었다.
촉석루
진주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발발 후 왜군은 전라도 곡창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왜장 나가오카가 3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격해왔고, 이에 맞서 김시민 장군이 불과 3,800여명의 관, 군, 민이 합쳐 6일간의 사투 끝에 승리한 전쟁이다. 훗날 이 전쟁의 승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차 진격 때 진주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때문에 보급로 역할의 전라도 곡창지대 확보와 서해로(路)로 진격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조선 점령의 주된 실패 이유로 꼽았을 만큼 진주성전투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진주에선 매년 진주남강유등축제가 펼쳐지는데 이는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유등을 띄운 것이 효시가 되어 7만 병사와 사민의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장수와 왜장 갑옷
찾아가는 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15, 25, 37, 38번) 10분
승용차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서 서진주IC로 나와 10분거리
진주성 관람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300원이다. 진주박물관 올 12월까지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진주박물관 내 3D 입체상영관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시에 시작해 14분간 상영된다. 문의 : 진주성 관리사무소(055-749-2485)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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