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사극에 푹 빠진 가을

 



 

 

과거 고리타분한 사극 탈피, 판타지·멜로 가미 가족 모두 시청
새로운 역사해석과 왕 중심서 내시·상궁 등 궁궐 내 중심 변화

현재 방송되고 있는 사극은 태왕사신기를 비롯해 이산, 왕과 나, 별순검(케이블 방송), 대조영, 사육신 등이다. 여기에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케이블 방송)이 더해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극 열풍이 거세다.
이러한 사극 열풍은 작년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항하듯 재미와 함께 국민 정서를 자극한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의 뒤를 이으며 꾸준히 역사물이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극은 과거 조선왕조 500년처럼 아버지만 홀로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산, 대조영, 왕과 나, 태왕사신기는 모두 드라마 검색순위에서 대부분 1~5위 내에 있을 정도로 시청률이 상당히 높은 사극드라마다. 그 인기에는 용의 눈물, 여인천하를 연출한 바 있는 김재형 PD, 그리고 허준, 대장금의 이병훈 PD처럼 사극에는 일각연 있는 사람이 연출을 한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기존 사극의 이미지를 벗어난 작품들이 많다는 것도 지금의 인기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 기존 사극 이미지 벗었다
드라마상 최고의 제작비와 엄청난 스케일 그리고 화려한 출연 배우에 방송 전부터 많은 이목은 받아왔던 MBC 수목 드라마 태왕사신기. 한 번의 결방이 수많은 항의로 이어질 정도로 수, 목요일 저녁은 태왕사신기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김종학, 윤상호 연출의 태왕사신기 기획의도는 한 마디로 판타지 서사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 강서고분벽화의 사신도에 그려져 있는 사신을 드라마 속에 등장시키면서 판타지 요소를 가미해 광개토태왕이 왕이 되어가는 성공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 속 배용준(광개토태왕 역)이 왕이 될 것이라는 뻔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인기가 높은 것 역시 판타지를 이용한 화려한 볼거리가 한 몫한다. 이는 몇 해전 사극 칼싸움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할 만큼 화려함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다모’와도 비슷하다.
이러한 태왕사신기와 비교해 다른 면모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가 왕과 나다. 사극의 주인공은 단연 왕이라는 것을 뿌리치고 여지껏 한번도 드라마에서 관심받지 못한 내시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내시라는 특수한 신분을 보는 재미에 궁중의 은밀한 비밀을 엿보는 즐거움까지 제공하고 있다. 김재형, 손재성 연출의 왕과 나의 기획의도는 한 인간에 대한 휴먼드라마를 그리는 것.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거세를 하고, 왕과 그 여인의 합궁을 지켜봐야만 했던 비운의 사랑이 성종을 비롯해 역사속에서 폭군으로 그려지는 연산군의 존재감을 미미하게 만들며 드라마에서 큰 흐름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작년 2005년 9월 추석특집극으로 제작되어 총 8회를 방영하고 조기 종영되었지만 케이블 방송에서 다시 방송하며 현재 인기 외화 CSI 시리즈에 힘입어 조선시대 과학수사를 소재로 방송되고 있는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그리고 소설 ‘원행’을 원작으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사갑연(죽은 뒤 맞는 회갑)을 맞아 화성 원행을 떠나는 과정 중 정조 암살 음모를 그린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 역시 기존 역사물과는 사뭇 다른 소재에 초점을 맞춰 제작된 사극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극들이 무작정 화려함과 재미만을 위해 제작되지는 않았다. 자기 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주된 이유 역시 역사는 현실을 반영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 사극은 현실을 반영한다
작년 인기를 끌었던 주몽과 대조영. 이 둘의 공통점은 어지러운 시대를 매듭짓고 나라를 건국하는 영웅이라는 것. 지금 방영되는 사극의 왕들도 건국영웅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장금처럼 당시 시대상황보다는 옛날 수라간의 모습을 그리며 인물중심으로 흘러가는 사극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극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맞는 흐름을 이용한다. 위 표에서 나타난 것처럼 수많은 사극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구성된다. 건국을 배경으로 하는 태조왕건, 주몽이나 왕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당파나 왕위싸움을 그린 여인천하와 같은 사극이 그러하다.
최근 방영되는 사극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대항, 고구려의 힘을 갖기 위해 수많은 영토전쟁을 불사했던 태왕사신기의 광개토태왕, 조선 9대 왕으로서 재정, 세법, 군역 등을 정비하며, 조선 전기 문물은 이 시기에 완성됐다고 평가받는 왕과 나의 성종, 그리고 끝도 없는 당파 싸움의 종지부를 찍으려 노력하며, 나아가 왕권 중심의 제도를 확립한 이산의 정조까지 모두 순탄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진다. 왕과 나의 기획의도에서 이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역사에 기록된 실제 사건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정치적 상황으로 재구성하여 마치 현실 정치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드라마 방송 시점이 대선정국과 맞물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대선후보들의 연관성이 회자되면서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든다’

▣ 재미가 먼저냐 역사적 고증이 먼저냐
조선왕조 500년 처럼 역사적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사극은 지금의 사극 분위기로 봐선 퇴근 후 지친 직장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지 못한다. 같은 것이라도 이색적이어야 눈이 가는 것은 요즘 방영되는 사극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위해 일부 역사적 사실이 재구성해 방영되다보니 역사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겐 실제로 그렇게 역사가 흘러간 것처럼 그려질 수도 있어 사극에는 항상 역사왜곡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작년 주몽이 방영될 당시 퓨전 사극으로 봐달라는 제작진의 말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역사적 사건이나 혹은 아예 시대를 초월해 버리는 허황한 설정 등은 방송 도중 항상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던 연개소문 역시 안시성 전투를 두고 성주가 누구인지 논란이 있었다. 최근에는 왕과 나에서 폐비 윤씨와 동년배로 등장하는 김처선이 실제 생존연대가 정확하지 않아 폐비 윤씨와의 나이 차이를 두고 잘못된 설정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왜곡이라 주장하는 것에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극이란 말그대로 역사를 소재로 한 것일뿐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것.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더라도 극적 재미나 흐름을 위해 작가의 상상력이 충분히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극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일뿐 방송 특성상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허구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극도 매일 보며 그것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을 정도로 늘어났다. 방영될 때마다 불거지는 역사적 고증문제는 뒤로하더라도, 해마다 사극은 다양한 소재와 화려한 볼거리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 취재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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