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만 있는 ‘한글 맞춤법’

 


 

[한 놀이공원 입구에 걸린 현수막과 간판. 이 곳을 찾은 수많은 아이들은 ‘프러포즈’가 아닌 ‘프로포즈’라는 단어를 읽게 되고 '주스’가 아닌 ‘쥬스’를 마신다.]

 

 

[신복로타리’라는 잘못 표기된 표지판이 있다. 하루 수십 , 수백 대의 차가 지나다니는 신복로터리. 하루에도 몇 번씩 이 표지판을 보아 온 운전자들은 과연 틀렸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읽는 것과 쓰는 것 달라 한글 단어장 만들어 공부


신문·방송·인터넷·길거리엔 잘못된 한글표기 수두룩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 우리말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최근 많아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KBS에서 방송하고 있는 ‘상상플러스’. 세대간의 언어차이를 극복해 세대공감을 얻기위해 매주 방송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아나운서의 미모와 출연진들의 입담에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단지 재미만을 주기위한 방송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인기가 유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송 중간중간 아나운서가 지적하는 잘못된 표현에 시청자들은 ‘아, 그렇구나’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써 온 ‘오손도손’이라는 말을 한 출연진이 내뱉자 아나운서는 ‘오순도순’이라고 꼬집는다.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이처럼 아나운서가 지적해주는 잘못된 맞춤법 표현이 3-4가지가 넘을 정도. 그만큼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쓰는 표현에는 잘못된 표현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언어표현의 기본은 1988년 제정된 ‘한글 맞춤법’을 토대로 한다. 1988년 문교부의 이름으로 고시 제 88-1호로 된 ‘한글 맞춤법’은 1988년 1월 개정 고시되어 1989년 3월부터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표준어 규정’ 역시 1988년 문교부 고시 제 88-2호, ‘외래어 표기법’ 문교부 고시 제85-11호로 고시되었다.
그런데 간혹 표준어의 경우 그것이 1988년 이후에 현실 발음과 쓰임에 규정에 제시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 생겼다고 할 때, 그런 경우에는 표준어 심의위원회를 열어 어떤 것이 좀 더 표준어 규정에 부합되고 현실 언어생활에 더 적합한 것인가를 따져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나온다면, 그리고 한글 맞춤법 규정에 열거된 여러 예시 가운데 그것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그 예 자체는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한글 맞춤법 규정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대로 쓰면 안 된다


일상생활에는 잘못된 표현들이 너무나 많다. 단지 알지 못할 뿐이다.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성린 교수는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 인터넷, 길거리 간판 등 글이 쓰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잘못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며 “단지 사람들은 이 표현이 잘못된 표현인지 알지 못하고 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취재를 위해 들른 대학가. 정 교수의 말처럼 대학가 주변 간판에는 몇 걸음에 한 개씩 잘못된 표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는 맞춤법에 어긋난 말들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위 ‘찌게’ 외에도 ‘뽁음밥’, ‘떡뽁이’, ‘칼치찌개’, ‘낚지볶음’, ‘소세지’ 등 우리가 매일 보는 메뉴판에도 잘못된 표기는 상당히 많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왜 틀렸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이렇게 쓰고 말하더라고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으며 맛있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대학가에 한정된 일은 아니다. 성남동, 삼산동처럼 울산의 번화가에도 맞춤법에 어긋난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국어문장의 이해’와 ‘국어와 생활’이라는 교양강좌에서 제출된 과제물을 보자. ‘우리말의 잘못된 표현’(전기전자시스템 01학번 이현식)이라는 과제물에는 울산시내 곳곳에서 한글이 잘못 표기된 간판, 전단지 등을 사진으로 제출했다. 또 ‘우리말 바로 쓰기’(전기전자시스템 03학번 최성원)라는 제목의 과제물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간판, 표지판, 자보 등 다양한 곳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들을 찾았다. 이 두 학생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잘못된 표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맞춤법에 어긋난 간판이나 문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 이현식
‘지금까지 살펴본 잘못된 표현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잘못된 표현으로 기사가 써지고 방송과 광고가 만들어지며 사람들 모두 무의식 중에 그러한 표현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그렇게 쓰고 있다’ - 최성원

이 두 학생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들을 그리 큰 노력없이도 쉽게 찾았다는 것과 잘못된 표현이 너무 많다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처음 과제물을 내 줄 때 학생들은 당연히 싫어한다”며 “하지만 한 두 개 찾다보니 주변에 잘못된 표현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학생들 스스로가 놀란다”고 말한다.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가 … A 신문사
대학생들도 인터넷으로 짜집기 하면서 … B 신문사
모 재벌 회장에게 재털이로 얻어 맞아 … C 신문사

위 예시는 실제로 인쇄된 신문 중 일부다. 위의 굵은 글씨는 모두 ‘프러포즈, 짜깁기, 재떨이’로 바뀌어야 바른 표현이다.

말하는 대로 쓰면 안 된다


얼마 전 울산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치러졌다. 짧게는 수개월 에서 길게는 수년 동안 공부해 온 것을 잊을까 수험생들은 저마다 한 손에 요약집 등을 들고 시험 직전까지 외느라 바빴다. 이들 수험생이 마지막까지 놓지않고 들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수험생들은 한글맞춤법 표기안과 외래어 표기법을 들고 있었다. ‘프로포즈’는 ‘프러포즈’, ‘로보트’는 ‘로봇’, ‘맛사지’는 ‘마사지’ 등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과 맞춤법에 맞는 말을 외고 있었다. 2년째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는 이 모씨(28). 그는 국어가 암기과목이라고 말한다. “다른 과목은 한 번 외우면 헷갈리지 않는데 국어는 정확하게 외우지 않으면 일상생활 언어와 맞춤법에 맞는 언어가 달라 문제가 나오면 헷갈려서 틀리게 된다”고 말한다.
한 공무원 학원 국어강사는 “학생들이 맞춤법을 어려워 하는 것은 일상생활언어로는 많이 쓰이지만 맞춤법에는 맞지 않는 단어 위주로 시험에 출제되기 때문에 외우지 않으면 틀리게 된다’고 말한다.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셈이다.
얼마나 어려운 지 공무원 수험생들이 외우고 있는 단어들을 살펴보자.
돈까스 / 육계장 / 모둠요리 / 오무라이스 / 짜집기 / 추스리다 / 콧배기 / 하마트면 / 삭월세 / 개나리봇짐 / 낭떨어지 / 구렛나루 / 돌맹이 / 설겆이 / 아지랭이 / 재털이 / 눈쌀 / 귀먹어리

위 표현은 모두 맞춤법에 잘못된 표현들이다. 하지만 위 표현들을 말하거나 쓰더라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말과 글은 위의 단어처럼 하더라도 시험에는 아래의 표현이 맞다.

돈가스 / 육개장 / 모음요리 / 오므라이스 / 짜깁기 / 추스르다 / 코빼기 / 하마터면 / 사글세 / 괴나리봇짐 / 낭떠러지 / 구레나룻 / 돌멩이 / 설거지 / 아지랑이 / 재떨이 / 눈살 / 귀머거리

우리말이 우리의 미래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www.korean.go.kr)에 들어가면 화면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우리말이 우리의 미래입니다’라는 문구다. 우리말을 바로 쓰자는 말이다.

한글 맞춤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정 교수는 “잘못된 표기어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으며, 잘못된 말을 쓰더라도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험 외에 맞춤법을 공부하는 기회가 없어 성인이 되더라고 자신이 여지껏 보아온 말이 틀렸다고 해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임태균(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 씨는 “바른 표현을 알더라도 발음상 혼돈이 생겨 나중에는 또다시 헷갈린다”며 “거리에서도 ‘로터리’를 ‘로터리/로타리’로 ‘프러포즈’를 ‘프러포즈/프로포즈’ 등 두 가지 이상 표기된 글이 많은 것도 바른 맞춤법 교육에 혼돈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잘못된 거리 간판, 잘못된 방송 자막 등은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각인시킨다. 이것이 문법에 맞는 한글 맞춤법을 따로 외우게 한다. 이는 어릴수록 더욱 심각하다. 길을 걷다보면 말을 배우느라 이리저리 글을 보는 아이들. 이 어린 아이들 역시 말과 글을 따로 공부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국립국어원은 561돌 한글날을 맞아 『사전에 없는 우리말·신조어』, 『외래어, 이렇게 다듬어 쓰자』, 『방언 이야기』 총 3권을 출간했다. 일상생활에서 남용되는 외래어의 다듬기, 신조어 등에 관한 책들이다. 신조어가 생기고 외래어를 다듬는 일은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가 생성, 성장, 소멸한다고 하지만 의도적인 변화는 한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새 보는 것과 쓰는 것이 달라진 한글. 왜 틀렸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익숙하게 자리잡은 잘못된 단어들은 표준어가 되기만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글날을 맞아 단 하루만이라도 주변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둘러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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