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티타임|

한번뿐인 여행

 

 

출처 : 네이버 포토갤러리

 

아침 일찍 출근해 취재원과 전화를 하며, 선후배 기자들과 업무조율을 하며 오늘 하루도 땀범벅이 될라치면 퇴근시간이다.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미리 준비해 둘 것은 준비하고 퇴근길에 몸을 간신히 올린다. 그리고 다음날, 역시 어제의 반복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무슨 요일인지 중요치 않다. 단지 금요일만 기다려진다. 그리고 다시 한 주의 시작….

쳇바퀴 돌듯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래도 자신은 열심히 산다고 자부심을 느끼며 통장에 찍힌 숫자로 위안을 삼으려 한다. 하지만 기계 부속품 같은 느낌은 왜 지워지지 않는지 여태 어떻게 버텨왔을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이 마음 깊숙하게 와 박힌다. 그래 이렇게 삶을 살다 갈 순 없다. 70살이 되어 편안한 노후를 보내면 무얼 하나. 그때 보는 세상은 지금처럼 볼 수도 갈 수도 누릴 수도 없는 세상일텐데….

가슴에 와 박힌 ‘변화’라는 단어가 출근해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 이제 ‘사직서’라는 것을 쓸 때가 왔나보다. 망설이지 말자. 우유부단해지지 말자. 대담해지자. 스스로 최면을 걸며 사직서를 출력하고 총무과에 제출한다. 부러워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짐을 싼다. 그래 떠나자. 어디든지 회사와 떨어진 다른 세상에서 하루를 보내보자.

 

평일 아침 8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출근으로 바쁜 그때 난 멍하니 베란다에 앉아 담배 한 개 물고 있다. 담배의 열기가 손끝으로 전해질 쯤 여행이라는 일상에서의 변화를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 먹는다. 갑자기 바빠졌다. 챙길 것이 많다. 돈은 가는 길에 뽑고 옷가지를 가방에 꾸역구역 밀어넣는다. 휴대폰, 사진기, 각종 충전기 등 이것저것 챙기니 가방 두 개가 묵직하다.

 

무작정 떠날까 아니면 목적지를 두고 떠날까 한참을 고민하다 학창시절부터 가고 싶었던 남해 바람흔적미술관으로 결정한다. 목적지가 정해지니 일사천리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이번만큼은 휴식을 위한 장소가 아닌 여행지다. 시속 90km. 나를 추월하는 차들이 안쓰럽게 보인다. ‘그래 먹고 살려니 빨리 가야겠지.’ 평소 보지 못했던 고속도로 주변 풍경이 보인다. 수십 번을 지나다녔을 고속도로가 유난히 새롭다. 수많은 광고 문구, 일렬로 늘어선 길게 뻗은 이름 모를 나무, 한 때 급박했던 상황을 남긴 도로 위 스퀴드 마크까지 오늘은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다다. 창문을 열고 바다 내음을 몸속 깊은 곳으로 들이마시며 오장육부에 활동 준비를 알린다. 제일 먼저 바람흔적미술관을 찾는다. 사진기를 챙겨들고 왜 그토록 가보고 싶었는지 내 자신도 모르는 이유를 찾기 위해 첫 발을 내딛는다. 내 몸이 반응하기를 기대하며.

 

뷰파인더에 보이는 모습을 연신 찍어댄다. 그리고 미술관에 들어가 어려운? 그림을 들여다본다. 아무리 둘러봐도 심장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해가 지려는 듯 붉은 기운이 하늘에 감돈다. 조급해진다.

무얼까, 무엇이 십년 가까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였을까? 차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백 장은 넘게 찍었을 카메라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찾아야 하는데…’ 연신 이 말을 되뇌이지만 어느새 손은 자동차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래 난 백수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는 모두 나에게는 휴일이다.’ 애초 잠자고 먹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인근 민박에 여정을 풀고 첫 휴일같은 평일밤을 채운다.

 

다음날 아침, 이곳에서도 바쁜 아침을 보내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아마 우리나라 모든 곳에서 이 같은 풍경일테지. 신호등의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지 않기를 기대하며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떼지 못하고, 시간을 보며 언제쯤 도착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옷매무새를 룸미러를 통해 가다듬으며 동시에 앞뒤좌우를 살피며 나의 출근길을 막는 다른 출근차량을 째려보고 있겠지.

 

다시 짐을 싸고 오늘 하루 일정을 짠다. 보물섬이라 불리는 남해는 말 그대로 조금만 가면 볼거리가 생긴다. 때문에 코스를 정해야 원샷 원킬 여행이 가능하다. 시계 방향으로 남해를 돌아 나갈 계획을 정하고 다시 어제 못 다한 미련을 찾아 남해 이곳 저곳을 하이애나가 먹이를 쫓듯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 속을 헤매인다.

독일마을 철수네집, 다랭이 마을, 몽돌해수욕장, 나비생테공원… 묵직해지는 카메라만큼 마음도 무거워진다. 남해를 한 바퀴 돌 즈음 차를 세우고 그간 찍은 사진을 본다. 눈으로 본 것과 마음으로 느낀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무엇이 다르랴.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일까. 왜 출발할 때와 지금의 마음이 여전히 같은 것일까. 허무하다. 사직서 빈칸에 ‘기자는 적성에 맞지 않음’이라는 글귀를 끄적인지 한 달이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집에 와 찍은 사진을 정리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조리 찍었다 생각했지만 막상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사진은 내 여정의 정점을 찍어주지 못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여행’이 뭘까, 변화를 위한 일탈, 그리고 사진 욕심이 여행을 망친 걸까.

 

잠깐 동안의 일탈같은 여행은 그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일상. 탈출하고픈 욕망을 조금도 서슴치 않고 누려봤다는 30대 초반의 객기,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못할 여행을 해봤다며 억지로 위안을 삼아본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진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말처럼 ‘기자는 적성에 맞지 않음’이란 말을 ‘기자를 해야한다’는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결론 내리며 굳이 이번 여행의 의미를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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