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시험을 치거나 누구와 약속이 있어 길을 나설 때, 어릴 적 나는 항상 그때마다 손목시계를 사고 싶어 했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몇 번씩 보아야 했고, 시간 맞춰 약속장소에 기다리다 친구가 늦게 온다 싶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몇 시인지를 여러 차례 물어봐야 했다. 이러한 불편 때문에 나는 언제나 손목시계를 사고 싶어 했고 은색 휘황찬란한 빛을 손목에서 뿜어내는 이들을 부러워했었다.
간절한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는 듯 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다 맞이한 대학생활. 처음으로 삐삐라는 것을 샀다. 이후 사람들의 손목에는 은색빛이 사라져가고 삐삐라는 것을 손목이 아닌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이제 약속장소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몇 시쯤 되었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항상 잔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는 수고로움이 생기긴 했지만 더 이상 손목시계의 존재는 필요치 않았다. 그때부터 난 손목시계는 손목을 조이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고 대신 최신형 삐삐가 언제나 사고 싶은 항목 1순위로 새롭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참 편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대인관계가 차츰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나의 존재를 알리는 10자리의 숫자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족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이 작은 기계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세상과 이어주고 있다는 점은 24시간 나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에 온 음성메시지와 연락처를 보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새벽의 일이 아침으로 이어지기 일쑤. 또한 나에게 볼 일이 있는 사람에게 내가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연락을 해야 하는 참 불편한 기계이기도 했다.
이러한 생활도 잠시, 사람들은 삐삐라는 것은 어느새 잊고 모두들 집안 무선 전화기같은 휴대전화를 밖에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용건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전화를 하기에 더 이상 타인의 용건으로 내가 공중전화로 가지 않아도 되는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생활은 삐삐와는 많이 달라졌다. 삐삐처럼 연락처나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일로 끝나지 않았다. 용무가 있으면 곧바로 전화가 왔으며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이 생기면 더 큰 문제가 되어 나를 끊임없이 찾았다. 나와 관계된 일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서울에도 부산에도 전국 어디든 공중전화가 없어도 나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과는 말을 섞어야 했다.
가끔 사람들은 삐삐나 휴대전화가 없던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 가끔 나 역시 휴대전화 없이 지내고 싶은 욕구가 일 때가 있다. 하루라도 없이 지내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 물론 이 생각 역시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사라져간 삐삐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터치폰.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기계. 벌써 사람들은 그 작은 기계 속에서 소통을 시작했다. 실사진을 보며 정확하게 좌측, 우측을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제 갈길을 찾아가는 중학생의 모습을 봤을 땐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에게 휴대전화는 길도 찾고 모르는 사람과 전화 없이 소통도 할 수 있으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따분함을 잠재워주는 족쇄가 아닌 친구같은 존재로 보였다.
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불과 20년.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것을 이 작은 기계에서 느낀다. 스마트폰이라 부르는 이 작은 기계는 더 이상 휴대전화라 부르지 못한다. 전화의 기능은 수십 아니 수백 가지의 기능 중 한 가지일 뿐. 이제 사람은 이 작은 기계 속에서 세상을 살며 돌아다니며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며 지식을 채운다.
앞으로 어떠한 기계가 발명되고 개발될 지는 모른다. 하지만 점점 더 세상이 편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단지 시계의 기능에서 출발한 나의 욕구는 이제 휴대전화에서 어느덧 세상과 소통하는 기계를 원한다.
글|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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