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성숙하는 여성의 힘 성두흔 2007-03-13
[ ‘여자들은 항상 날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라는 설문조사에 엄마의 설명을 듣던 한 어린이가 ‘그렇다’ 난에 스티커를 붙인다.]
[시각장애인여성회에서 마련한 점자 명함만들기 행사에 여중생 2명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점자 명함 제작을 부탁하고 있다.]
[ 8일 오후 2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무대 앞에 각 여성단체 임원들과 시민들이 간단한 율동을 하며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과학대 사태와 맞물린 12회 울산여성대회
갈길은 멀지만 분명히 진일보한 여성인권

▣ 과학대 사태와 여성운동
지난 9일 울산과학대학 청소용역원의 집단 계약 해지 사태와 관련, 이 학교 노동조합과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면학분위기 저해와 민노총 자진퇴거를 주장하고 나섰다는 기사가 주요 언론사에서 보도됐다.
이번 사태는 동구 울산과학대학이 지난 달 중순께 대학 내 모 청소용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청소용역원 27명이 해고되고 이에 반발한 청소용역원 8명이 계약해지를 철회하라며 교내 본관 탈의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총학생마저 농성중단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학교측의 강제퇴거에 청소용역원 여성들이 알몸으로 저항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 사태와 관련해 누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짚어보아야 할 점이 있다.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어찌보면 마냥 당할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이 사태의 중심에 있다는 것에서 많이들 놀라워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이 사태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남성들이 이 사태의 중심에 있다는 것과 비교해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이번 사태의 중심에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 있었다면 이처럼 크게 연일 보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수의 여성이 외롭게 농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의 날을 맞이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울산여성대회’ 준비위원장 홍경미 씨는 “예전에는 이처럼 소수의 여성들이 나설 수도 없었다”며 “남자들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알몸으로까지 저항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떳떳히 낼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여성도 당하고만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 사태는 여성의 날 하루 전인 지난 7일 강제퇴거와 관련해 알몸으로 저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번 ‘울산여성대회’가 가지는 의미가 더욱 커졌다.
‘울산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이정희 씨는 “옷까지 벗으며 권리를 내세워야 할 만큼 사태가 이렇게까지 흘러온 것은 안타깝다”며 “적은 수의 여성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한번 해 보겠다는 용기는 여성으로서도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양애정(연암동. 27)씨는 “과학대 사태는 신문으로 봤다”며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쇼핑하러 나온 이곳에서 또다시 그 사실을 접하니 쇼핑하러 나온 내 자신이 약간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자조섞인 말을 내뱉었다.

▣ 여성인권, 분명 높아졌다.
‘울산여성대회’가 열린 장소는 롯대백화점 광장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주말을 맞아 가족들이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쇼핑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중앙에 배치된 각 여성단체들의 부스를 힐끗 보기만 하며 지나가는 시민들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3월 8일이 올해로 99주년 ‘세계여성의 날’이라는 것과 울산에서는 12회째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물론 올해로 몇 해가 되고 오늘이 무슨 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념일이 있으며, 이보다 더 오래된 기념일들도 많기 때문이다.
홍경미 준비위원장은 “10명 중 1명 정도가 여성의 날을 알고 있을 정도로 인식이 부족하다”며 “여성의 문제를 여성이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여성 관련 범죄나 인권 등 많은 면에서 한층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했다.
그는 또한 “식목일은 나무를 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산 전체를 꾸미고 국토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과정 중 하나다”며 “여성의 날도 한 명 한 명의 뜻이 모인다면 여성인권신장도 머지 않아 이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이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결혼이민자 가족들과 함께 여성폭력 근절을 위해 참가를 한 ‘울산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이정희 씨는 “아직 여성은 다소곳하고 조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이번 행사로 모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해가 갈수록 여성인권이 성장하는 만큼 이번 해에는 성폭력, 성매매 등에서 많이 개선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월남쌈 시식회를 준비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낸 결혼이민자 양월계 씨는 “처음 한국에 올 때보다 말도 못할 만큼 살기가 좋아졌다”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이는 만큼 더 열심히 노력하는게 먼저 온 사람의 임무”라고 말했다. 한 할머니는 “여성인권 등을 내세우며 이렇게 크게 행사를 하는 것은 예전엔 꿈도 못 꿨다”며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살기에는 분명히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재희(남, 21) 씨는 “여성들이 오늘날까지 남성보다는 사회에서 위축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며 “자신의 권위를 찾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남성으로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가나 시에서 지원도 안 하는 여성의 날. 그만큼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원금은 둘째치더라도 한번쯤 사회에서의 약자를 생각하는 날이기를 바란다.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세계 여성의 날은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특히 일하는 여성들의 안전한 노동환경, 단결권 인정을 내세운 날로서 여성 인권신장의 기폭제가 된 날이기도 하다.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이날을 기념하여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울산에서도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10일 남구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울산여성대회준비위원회 주최로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3·8 세계 여성의 날’은 올해로 99주기를 맞이했으며, 울산에서는 ‘울산여성대회’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힘으로, 열려라 평등세상’이라는 구호아래 올해로 12회째 맞이했다. 8일 여성단체 기자회견부터 시작된 울산여성대회는 9일 여성노동영화 상영과 10일엔 울산여성노동자 힘 모으기 행사와 울산여성대회가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매매피해여성들이 만든 물품 판매와 장애인 체험 마당, 성의식 실태 조사 마당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참여거리로 준비됐다. 특히 이주여성들이 만든 월남쌈 부스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남자친구와 함께 성의식 실태조사에 참여한 한 여대생은 “평소 여자이기 때문에 불평등하다고 잘 생각하지는 못했다”며 “여기와서 많은 행사에 참여하다보니 여지껏 여자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했어야 했던 많은 행동들을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됐다”는 말을 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사회 각 방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점차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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