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치를 즐기는 곳

추리문학관

 

침 묻혀 가며 페이지를 넘긴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속도의 시대, 인터넷 속 정보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책을 읽기 위해선 대단한 결심을 하고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에야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점은 줄고, 책을 만지기보다 마우스를 만지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됐다.

경쟁의 시대, 뒤쳐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차를 마시듯 가볍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 세계 유일 문학 보석함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관이 있다는 곳을 찾아 향한 달맞이고개. 문학관이면 으레 한적한 산속 혹은 탁트인 자연을 배경으로 넓은 주차장을 갖춘 여행 명소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문학관으로 향하는 발길이 오히려 뜸하지 않았을까.

달맞이고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추리문학관은 평범한 주택건물에 ‘셜록홈즈의 집’이라는 작은 간판과 추리문학관임을 알리는 비석이 전부다. 바로 옆으로 빌라가 즐비하고 앞으로는 마을버스가 수차례 다니는 곳에 국내 아니 세계에서 유일한 문학 보석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여명의 눈동자’로 유명한 김성종 작가가 지난 1992년 3월 자비를 털어 마련한 곳이다. 그는 독자들로 인한 금전적인 이득을 다시 독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학관 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또한 작가의 연고도 없는 부산에 추진한 데는 80년대 어느날 방문한 부산의 아름다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겉 모습은 일반 주택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문학관의 1층은 향긋한 커피향과 곳곳에서 삶을 유지하는 각종 꽃과 식물이 자리해 북 카페라기보다 어느 훌륭한 유럽 저택의 서재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층과 3층은 셜록홈즈 관련 각종 액세서리부터 세계 문호들의 사진들이 전시된 열람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열람실 창가로 보이는 부산 해운대 바다의 풍광이 일품이다. 이곳에는 추리소설 2만 권을 비롯해 아동・참고도서 3천여 권, 외국원서 3천여 권 등 총 4만여 권의 장서가 비치돼 있다. 그야말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식의 천국이요 문학의 사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평일 오전 탐방을 위해 찾아간 문학관은 조용했다. 아침햇살에 비친 열람실 내부는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인위적인 전등을 켜지 않아도 은은한 빛을 받은 책들은 그 속 글귀를 궁금케 했다.

문학관은 초창기 5층 건물에 4층까지 개방됐고 5층은 작가의 집필실로 사용됐었다. 하지만 점점 방문객이 줄어 8명이던 직원은 3명이 되었고, 열람실도 3층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장서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찾는 발길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관이 주택가에 위치해 있으나 이렇듯 고요함을 유지하는 데는 아마 문학관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문학관이 부산에 건립된다는 사실에 초기에는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문학관을 자비로 운영하는 동안 인건비, 각종 장서 구입 등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때 폐관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문학관은 매주 소설창작교실, 추리독서토론, 영화상영 등이 열리며 동호인들 중심으로 이용자들이 서서히 늘고 있어 위안이 되고 있다.

 

 

◆ 평범한 공간으로

부모와 학부모는 다르다는 한 광고 카피처럼 성적을 위한 교육에 인성은 성공에 따라온다는 잘못된 생각이 아이들을 학원으로, 공부방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한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떼를 쓰는 아이를 억지로 차에 태워 보내는 엄마의 마음 반만이라도 아이와 함께 책을 펼쳐보면 어떨까.

세계적으로 이름난 이들을 동경하면서도 그들이 지금 어떤 책을 읽느냐보다 얼마나 돈을 버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떠한 책을 읽는지는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찌 보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날 정도로 조용한 문학관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커피숍이나 마트에 가는 발걸음처럼 가볍게 들르는 곳. 문학관이란 그런 곳이다. 특별한 공간이 아닌 평범한 생활 속 공간이다.

하루아침에 책을 가까이 한다고 자신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기는 힘들다. 한 나라의 문화 역시 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해서 서서히 만들어 간다. 외국의 유명 문학관이나 건축물 등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는 지역 주민들, 나아가 국민 전체가 명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외에도 사진을 찍고 한번쯤 들르는 곳이 아닌 생활 속 공간으로 생각하며 삶의 일부로 들어와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에서 오다가다 가보는 곳으로 추리문학관이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누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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