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배 대미 수출농가 대표 이채진 씨]
봄엔 희망이 있어 기쁘고 가을엔 배가 있어 행복하다
"배도 이제 품질경쟁시대 입니다. 한때 새로운 선진 농법을 도입하기 위해 전정(가지치기)을 예전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했을 땐 어르신들은 젊은 것이 농사 다 망친다고 나무라셨죠. 7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저와 비슷한 방법을 쓰고 계십니다. 처음이 어렵지 하고 나면 당도도 높고 과실도 많이 열리는 것에 노하셨던 어르신들도 제 배 밭에 오셔서 도움을 청하곤 합니다. 울주배는 작년 전국 품평회에서 1등을 했을 정도로 품질이 아주 우수합니다. 하지만 히딩크의 말처럼 아직도 배가 고프기에 앞으로도 계속 농사 공부를 할 것입니다. "
지난 17일 울주군 청량면 울산배원협 율리사업소에선 울주배를 미국으로 보내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번이 첫 수출이다. 그 현장 한쪽에서 흐뭇하게 작업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이채진(55. 대미 수출농가 대표) 씨. 역시 농가대표답게 주위엔 많은 취재진이 그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이 선적 작업이 아니더라도 매년 한 두 번은 꼭 방송에 얼굴 비칠 일이 생긴다는 그는 이날은 아예 일을 포기하고 촬영에 한창이다. 그날 시끌벅적 했던 선적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배 밭, 농사를 잘 지었다는 기쁨에 500그루의 배나무가 더욱 든든해 보인다. 이번 수출길을 열기 위해 또 선진농법을 배우기 위해 해외로 타지로 수없이 돌아녔던 이 씨. 제작년 병해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수출이라는 결실을 맺었다는 것에 그간 노력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현장 사진 한 장으로는 그의 기쁨을 싣지 못해 직접 배 밭으로 찾아가봤다.
‘내가 키운 배는 뉴욕, LA서 맛볼 수 있어요’ 이 씨를 포함해 울주군에선 110여 농가가 대미 수출농가로 지정돼 있다. 이들 농가에서 한 해 800톤 가량 배를 수출하게 된다. 재배지 선정부터 배를 따 선과작업을 하기까지 일일이 미국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야 수출길이 열리는 까다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계속 대미 수출을 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배 소비적량이 30만 톤이다”며 “하지만 수확량은 42~45만 톤으로 모든 배 농가가 제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수출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배 가격 안정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운 배가 미국까지 수출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품질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그의 배는 미국의 뉴욕과 LA로 수출된다. 현지 시장 개척을 위해 울주군 관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한 결과다. 물론 울주배가 해외로 처음 수출되는 것은 아니다. 동남아, 유럽 등지에는 이미 수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만큼 품질에 대한 기준이 까다롭지 않기에 더욱 이번 수출에 의미를 둔다.
‘농부가 아니라 학생 같아요’ 그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배 농사를 시작한 지는 20년이 됐다. 그는 “부모님께서 손수 일구어 놓은 배 밭이다”며 “돌아가신 후 이 땅을 가만 놔두기에는 부모님이 흘리신 땀방울이 허사가 된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배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당시 30대의 젊은 나이에 농사를 시작한 후 그의 배는 2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단지 배를 생산한다는 과거와는 달리 배 종류만도 신고, 풍수, 금촌추 등 10여 종류로 저마다 당도, 과실 크기, 과피, 과육, 저장력 등이 조금씩 다르다. 또한 배에 씌우는 봉지도 30여 종류로 종이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을 정도다. 병해충을 막기 위해 씌우는 것으로만 알았던 배 봉지에는 상당한 능력이 있다. 빠르거나 혹은 늦게 과실을 맺게 할 수도 있고, 배의 색도 푸른거나 노랗게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옛날에는 일반 신문지로 배봉지를 사용했지만 인쇄된 글자가 일정하지 않아 일조량이 배 하나에도 달라지는 현상이 생긴다”며 “따로 제작된 배 봉지는 균일한 인쇄와 두 겹의 종이를 사용해 색상, 시기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시기는 추석 전이다. 때문에 올해 추석이 예년에 비해 빠른지 늦은지 따져보고 그에 맞는 봉지를 씌운다. 이 외에도 농약종류, 전정(가지치기)방법 등 배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때문에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학생처럼 공부를 한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맛있고 품질 좋은 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성적표를 받듯 이 농부는 공부를 하면 배라는 성적표를 받는다”고 말한다. 조금이라도 당도를 높게 할 수는 없을까 조금이라도 과실이 더 열리게 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다. 외국이나 타지를 견학하며 힘들게 배운 농법도 도입하는 데는 쉽지 않았다. 주위 어르신들은 “젊은 놈이 농사 다 망친다”며 역정도 냈다. 하지만 7, 8년이 흐른 지금, 그의 나무에서 열리는 배가 더 많고 당도도 높아 역정을 냈던 사람들도 새로운 농법을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예전 한 박스에 2만 원 정도 하던 배 가격이 품질 향상으로 5만 원까지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앞으로는요’ 한번은 선진농법을 배우기 위해 그가 서울로 간 적이 있었다. 울산도 배 농사가 시작된 지 100년이 넘었다지만 울산 배에 대한 자료나 인식이 전혀 없다는 것에 그는 많이 놀랐다고 한다. 부산, 경북 등 울산 인근에서 울산배가 모두 팔려 나가기에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 하지만 이젠 서울 가락시장에서도 울주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판로가 확장되었다. 품질 역시 울주배가 작년 전국 배 품평회에서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우수함이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국외서도 울주배를 찾고 있을 정도. 남은 건 판로개척이다. 10만 톤 이상이 더 생산되고 있는 현실에 비춰봐도 배 가격 안정을 위해 그가 해외 판로 개척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또한 그간 노력에 비해 그가 생산해 낸 배에 스스로 75점이라는 조금은 낮은 점수를 준다. 아직은 뭔가 부족함을 느끼끼 때문이다. 그는 “손이 짝짝 붙을 정도의 당도, 어떤 태풍이 와도 견딜 수 있는 가지 등 아직 배워야 할 기술이 너무나 많다”며 “꾸준한 수출확대와 품질향상에 몰두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노력하는 농민이 있어 올 추석상도 풍년이다.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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