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분교 가을 운동회 하던 날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를 지나 몇 개의 고바위를 넘어서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울산에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림같은 풍경속에 소호마을의 궁근정초등학교 소호분교는 자리하고 있다. 선생님 4명에 전교생 15명, 1923년 사설강습소로 처음 개설된 이후 작년까지 졸업생은 704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학교다.
이곳에서 9월의 마지막날 분교라서 그리고 분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을 운동회가 열렸다. 1인 다역으로 유명한 학교 선생님은 이날도 역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덕분에 농사일로 바쁘시던 부모님들은 모두 일손을 놓고 오늘만큼은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올해 운동회는 소호마을 옛날사진전까지 함께 열려 소호마을 주민 모두 흥과 추억에 하루를 보냈다.

 

소호마을 큰 잔치
궁근정리를 지나 곳곳에 걸린 현수막을 따라 몇 고개 넘어서면 드문 드문 몇 가구가 보이는가 싶더니 초행길 객(客)식구들의 눈을 확 사로잡을 만큼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이곳이 전교생 15명이 선생님 4명과 함께 공부하는 궁근정초등학교 소호분교다.
2006년 졸업생 4명, 2007년 졸업생 단 1명 등 개교이래 2008년까지 졸업생 수가 704명으로 현재 3학급만이 운영될 정도로 작은 학교다. 지난 6월 울산시교육청이 오는 2013년까지 학생 수 60명 미만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한다는 계획에 포함된 6곳 중의 한 곳이다.
하지만 교육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는 소호마을 주민들의 말처럼 1923년 개교한 이래 8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소호분교는 소호마을 어린이들에겐 학교이자 놀이터로서,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겐 모임의 장소이자 휴식처로서 학교의 사전적 의미 그 이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9월 30일은 소호분교에 가을 운동회가 열린 날이다. 소호마을 사진전시회와 함께 열린 이번 운동회는 며칠 전부터 울주군 곳곳에 ‘소호분교 가을 운동회 및 소호마을 사진전시회’라는 현수막이 걸리면서 소호분교 잔치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이날 만큼은 마을 주민 모두 일손을 놓고 운동장에 모였다. 음식장만은 마을 어머니들이, 게임에 필요한 각종 집기들은 마을 청년회에서, 그리고 3명의 선생님들이 최종 점검을 하면서, 그렇게 소호분교의 가을 운동회는 준비되고 있었다.
김함섭 궁근정(소호분)초등학교장은 “소호분교의 운동회는 마을의 큰 잔치인 만큼 선생님과 학생들은 물론 마을 청년회, 어머니회 등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다 같이 즐기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어찌보면 소호분교에서의 가을 운동회는 아이들의 잔치이자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 잔치가 될 수 있는 것은 분교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전엔 운동회 오후엔 노래자랑
교장선생님의 경기개시선언이 있은 후 비로소 시작된 운동회는 오전에 준비한 게임만 모두 17가지. 달리기 경기만 하더라도 전교생이 모두 뛰어도 4명씩 출발 총소리 다섯 번이면 끝이 나기에 학년별 경기나 장기자랑은 애초에 없었다. 대신 물풍선받기, 판뒤집기, 오리발 릴레이 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분교이기에 그리고 분교라서 가능한 운동회가 진행됐다.
운동회 시작전까지 줄곧 바쁜 모습을 보였던 청년회 사람들은 교단 뒤쪽에 모여 잠시 허기를 달래는가 싶더니만 아이들의 손짓에 곧바로 운동장으로 달려나가기 일쑤. 이는 음식을 장만하던 엄마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 손짓에 급하게 달려나간 한 어머니는 출발선에 서게 무섭게 운동화를 벗고 오리발을 신고선 냅다 뛰기 시작하고, 느티나무 그늘아래 팔짱끼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마을 청년들 역시 아이들 손짓 하나에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물풍선을 받는다. 몇 게임 진행되니 이제는 아예 게임 일정을 살피며 마을 주민들끼리 자신있는 게임을 미리 선택해 자진해서 나가는 모습까지 보인다.
마을 주민 모두 한 두 게임씩 참여하면서 운동회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자 오후부터 본격적인 마을 잔치를 알리는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누구 엄마 한번 나가봐’라는 말에 수줍은 듯 나서 한 곡조 뽑아대는 모습에 주민들끼리도 웃음보가 터지며 소호분교 운동회는 그야말로 절정에 달한다. 

 

사진전시회
이번 운동회는 소호마을 옛날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소호분교 선생님들이 오래전부터 발품을 팔아 모은 사진과 기증 받은 사진 등 백여 장이 넘는 소호마을 옛날 사진들은 이날 운동회에 참석한 마을 주민들에게 재미와 함께 추억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옛날 사진들 중에는 1975년 소호국민학교 당시의 가을 운동회 사진도 포함돼 있어 마을 주민과 분교 어린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운동회에 참석한 최춘자(65) 할머니는 “사진 하나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사진 속 시절로 너무 돌아가고 싶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9월의 마지막날,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면서 열린 소호분교의 가을 운동회는 수확철의 바쁜 일손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해 즐기는 행사로 여지껏 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운동회로 만들어졌다.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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