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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용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속도가 생명 은어사용, 유행어처럼 국어근간 못 흔든다
OTL(좌절), 므흣(기분 좋은), 조낸(매우), 지대(제대로), 원츄(원하다), 훈남(훈훈한 느낌의 좋은 남자), 잠수타다(잠적하다), 얼짱(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 쌩얼(민얼굴), 백조(일하지 않는 여자), 밥터디(밥 먹으며 하는 공부), 무플(댓글이 없음), 완소(완전 소중한), 불펌(허락없이 게시물을 퍼감), 오나전(완전), 지름신(충동구매를 부추기는 신), KIN(즐, 짜증나니 꺼져라), 간지(느낌이 온다, 일본어에서 유래), 안습(눈물 난다, ‘안구에 습기차다’의 줄임말)
대학생 은어 교수가 몰라 대화단절? 네티즌 ‘질타’이어져
지난 17일 일부 언론이 교수신문이 실시한 설문 결과를 두고 ‘교수 절반이 대학생들이 즐겨쓰는 은어를 모른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과연 이 기사가 올바른 보도였는지에 대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생들이 인터넷, 휴대전화 등에서 즐겨 쓰는 은어의 정확한 뜻을 대학교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설문조사는 대학생들이 즐겨 쓰는 은어 16개를 뽑아 전국의 교수 표본집단 10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조사결과 설문에 참여한 교수의 절반인 50.4%가 이들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주관식으로 적게 한 3문항(KIN·간지·안습)에서는 각각 4명, 3명, 35명만이 비슷한 뜻을 적은 것으로 설문결과 나타났다. 더불어 수도권 소재 학부생 35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강의시간 외에는 교수와 대화하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전체 학생 중 48.7%에 달했으며, ‘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엔 교수의 18.8%, 학생의 37.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이 즐겨 쓰는 은어의 뜻을 잘 모르듯이 사제 간의 대화도 부족하다’고 지적했으며, 앞다퉈 대학생들이 즐겨 쓰는 은어를 소개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은 설문결과보다 기사 내용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누리꾼들은 “교수·학생 간 의사소통을 위해 교수들이 은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다”며 “교수와의 대화에서 은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기사를 반박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기자의 논리가 잘못됐다”며 “요즘 기자는 아무나 하냐”는 식의 기자의 자질까지 거론하는 글들도 이어졌다. 또한 “요즘 대학생들의 은어는 비속어에 가깝다”면서 “학생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은어까지 알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대학생이면 어느 정도 지식 있는 성인들인데 이것을 교수들이 학생들에 대한 무관심, 권위주의로 은근히 유도하고 있다”는 등 설문결과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성범중 교수는 “교수들이 대학생들의 은어를 모른다고 해서 사제 간 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은 다소 과장됐다”며 “대화 도중 은연중에 은어가 튀어나올 수는 있어도 이것 때문에 대화가 안 될 정도는 아니다”고 말한다.
통신 세대의 문화현상으로 이해
사전적인 의미의 은어는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을 의미한다. 때문에 과거에도 심마니나, 학생, 그리고 군인들 사이에선 빈번히 사용되었으며, 앞으로 계속적으로 은어는 특정계층에서는 사용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어 사용이 최근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일부 학생들이나 특정 계층이 아니라 은어 사용 계층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은어는 보통 자기 집단의 이익이나 비밀 유지를 위한 언어는 아니다. 인터넷 특성상 빠른 답변을 요구하는 게임에서나 채팅시 ‘토욜(토요일), 마자(맞아)’처럼 자신의 뜻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을 줄이거나 받침을 탈락시킨다. ‘효니’라는 한 누리꾼은 “게임 도중 급하게 내 뜻을 전달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며 “이때 말을 줄여 쓰는 것은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편리하다”고 말한다. 또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낼 경우에도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어 경제적인 문제나 입력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핵심어 위주로 글을 작성하거나 띄어쓰기를 무시하면서 한 번에 보내려 한다. 성 교수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폭넓게 인터넷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세대의 특징으로 이해해야지 은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막을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통신상의 용어를 사용하는 집단은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의 사용여부에 따라 크게 나뉘어진다. 일반 은어처럼 특정계층,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된다면 여지껏 지내온 것처럼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 통신을 즐기는 세대와 그렇지 않는 세대로 크게 나뉘기 때문에 이는 은어 사용만의 문제가 아닌 세대간의 문제로 불거지는 것이다.
국어문법 근간 흔들리나
한창 대전 엑스포가 치러질 즈음 ‘도우미’라는 용어에 대해 떠들썩 한 적이 있다. 언어규범상 ‘도움이’로 써야 하지만 대중들이 하나같이 ‘도우미’로 쓰고 발음을 하기 때문에 결국 ‘도우미’가 언어규범의 예외로 인정된 일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먹을거리’가 언어규범상 맞지만 많은 언론과 대중들은 ‘먹거리’로 발음하고 쓰고 있어, 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 통신상에서 쓰고 읽혀지는 은어들도 이러한 언어규범을 무시한 단어가 많아 ‘도우미’, ‘먹거리’처럼 예외로 인정되지 않을 지 의문시 된다. 이에 성 교수는 한마디로 “걱정할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대학생들이 즐겨 쓰는 통신용어들은 한때 유행어처럼 생각하면 된다”며 “일반 대중들이 쓰지도 않으며 통신상이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국어문법의 근간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성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과거에도 이러한 언어규범을 무시한 단어들이 사용되었으며 한때 사용되다 말았다는 점을 든다. 더불어 언어규범은 적게는 수십년에서 많게는 수백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을 두고 자연스레 변화한다는 점을 든다. 외국어를 보더라도 영어에서 ‘you’를 ‘u’로 쓰는 것이나 복잡한 한자를 쓸 때 약자를 쓰는 것들도 문법에는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지금의 언어규범에는 ‘도우미’나 ‘먹거리’처럼 논란거리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국어학자들의 생각이다.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되살리려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고 외국어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에 많은 청소년들이 사라져가는 우리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언어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며, 생성되는 것 또한 자연스런 현상이라 말한다. 물론 언어는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식적으로 국어문법을 무시하고 외국어를 남발하는 은어 사용은 누리꾼들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 취재 : 성두흔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