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아침에 먹는 요구르트? 암튼 쿠퍼스..간에 좋다나 뭐라나~

음 영양성분을 살펴보자면..

열량 10kcal, 탄수화물, 단백질, 칼슘, 그리고 각종 비타민 주루룩~

또한 콜레스테롤 10mg ㅠ 지방2.4g ㅠㅠ 이건 왜 드가는지...

 

 무슨 뜻인지 찾아보려고 해도 귀찮아서...

 

 저 인테리어 벽에 박는다고 드릴가지고.. 많이 힘들었다...

 

 

 

 나랑 가장 오래된 인형. 벌써 2년이 넘었네. 차에서 떼서 사무실에 달았다는.... 우측 사자는 여자다.

 

 사무실이 좀 어두워 디자이너를 위해 친히 구입한 전등..

빨간색이 예쁘다. 책상에 집게 처럼 집어서 설치.

 

 형이 선물해준 무소음 벽시계.

가끔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시간이 억수로 잘 간다. 소리없이..

 

 우리의 멋진 디자이너님께서 손수 만들어 기증한 벽시계..

주의할 점은 가끔 우리 안 볼 때 시간을 멈춘다는 것.

이제 우리 사무실은 벽시계만 두 개.

 

 사무실 회식을 위해 손수 마트에서 구입한 미래의 상추들..

이거 키워서 자라면 고기 회식이다.

아직 상추 씨앗이 많이 남아서 올해는 사무실 회식을 자주할 듯..

어여 어여 자라라 상추야~

 

 우리 사무실 옆문. 먼가 썰렁해서 붙였다.

예소담 디자인. 이게 우리 회사 이름~

예쁘고 탐나는 디자인~~~

 

전기난로가 진짜 전기먹는 난로였다.

틀어도 주위에만 따뜻하고.. 그래서 처분.

새로 들여온 기름난로. 기름 냄새가 조금 나지만 틀면 사무실이 후끈 달아오른다.  

 

 전기 난로 시절 추워서 걸어놓았던 무릎담요가 보인다. 이젠 장식용이당~

여기가 내 자리..먼가 지저분한 것 같지만 나름 깔끔한 정리를 했다.

 

울며 웃으며, 2010년

 

글|성두흔 기자

 

다사다난했던 2010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0년 1월 1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간절히 빌었던 소원도 이제 성취까지 며칠. 또다시 새해 일출을 보며 다짐을 할 때가 다가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단어 그대로 올해는 많은 일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올 한해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내년을 준비해 보는 것도 지금이 제일 좋은 때인 것 같네요.

 

새해 첫 시작은 폭설과 한파였습니다. 1937년 기상관측 이래 서울에 내린 눈이 25.8cm, 100년만의 대설로 기록되었고, 당연히 극심한 교통체증과 물류대란 등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내린 눈이 녹을 즈음 SAT 부정시험 적발 사건이 뉴스로 연일 방송되며 올해도 여전히 취업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복선을 깔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울한 소식은 곧 사라졌습니다. 바로 벤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죠. 금6, 은6, 동2로 메달순위 5위를 기록하며 겨울 스포츠 강국으로 한국을 세계에 각인시키게 됩니다. 그 정점에 선 김연아. 피겨스케이팅은 외국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인식을 바꾸게 해준 사람입니다. 특히 아사다 마오라는 일본인과의 경쟁 구도로 국민들의 관심은 극에 달했죠.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점프는 국민들의 가슴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였습니다. 다들 그렇듯 김연아의 금메달은 국민 여동생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전(前) 국민 여동생인 문근영 씨를 일반 연예인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희일비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올 3월은 특히나 국민적인 관심을 끄는 일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좋지 않은 소식들로 말이죠. 서해바다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46명의 해군 장병이 수장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수개월간 여파는 가시지 않고 지금까지 남북관계에서 큰 장벽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또한 성폭행 사건은 올해 왜 그리도 많이 발생했는지 결국 전자발찌와 신상공개 등 각종 법규가 제?개정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끊이지 않아 더 큰 사회혼란을 가져왔었죠. 또한 올 초 부정시험 문제가 말해주듯 대졸백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 추억을 되새길 때나 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4월은 지난달의 힘듦을 잘 견뎌냈다는 듯 천암함 실종자 46명을 침몰 20여일 만에 인양하기 시작하며 희망의 끈을 들입니다. 비록 사망한 채 인양이 되었지만 목숨을 건 인양작전에 온 국민들은 축제와 각종 행사를 취소하며 아픔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한민족이라는 말을 이때 절실히 느끼게 해줬습니다.

5월 역시 천안함 관련 후속 사건이 이어집니다. 북한 어뢰로 추정되는 파편이 발견되면서 정부는 천안함 사고 북한 책임론을 들며 강경해집니다. 국민들은 설마설마 하면서도 아직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6월은 월드컵의 달이었습니다.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태극전사들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아동성폭행 김철수 사건으로 불리는 아동성폭행범을 검거로 매년 1천 건 발생이라는 통계가 부모들의 마음 한켠을 쓰리게 합니다.

하반기는 한미 연합훈련과 서해 육해공군 합동훈련 등 천안함 사건 이후 군기 강화와 대북 압박 등이 이어집니다. 이러던 차 김정일은 3남 김정은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죠. 옛날 조선시대에 중국에 왕위를 허락받아 왕권승계를 하던 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북한에 왕권승계가 조선시대 유물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하던 이때 우리나라는 현대판 조선시대 음서제도로 불리는 장관 딸 특채 사건이 보도됩니다. 이후 각종 특채에서 장관 등 유명 인사들의 자녀들이 특채로 각종 관공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부모들에게 괜한 불똥이 튀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전 국민의 열망을 우주에 보내고자 했던 나로호는 애석하게도 공중에서 폭발하며 국민들에게 또 한 번 도전의식을 심어줬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작은 땅 넓은 우주를 가진 강대국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흘러온 대한민국의 2010년 삶은 조금 침체기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일희일비라는 말처럼 신묘년 2011년은 일희를 할 차례네요.


그 시발점으로 내년 휴일은 올해보다 2일이 늘어난 64일입니다. 벌써 계산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토요 휴무까지 고려하면 최대 116일이지요. 숫자상으로만 따지면 3일 일하고 하루 쉬는 그런 행복한 주 삼일제 해가 됩니다. 또한 올해가 유난히 공휴일과 명절이 겹치며 사장님들의 입가에는 미소를, 사원들의 입가에는 주름살을 더했다면 내년은 특히 징검다리 휴일이 많아 역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구정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토?일요일과 이어져 황금연휴를 즐길 수 있으며, 3?1절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이 목요일과 화요일로 징검다리에 놓여 말그대로 하루 일하고 하루 쉬고, 다음날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 직장인들이 바라는 노동 선진국이 될 듯합니다.

 

세상 그 누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분명히 기억될 2010년. 365번이나 우리에게 아침을 선사한 해를 보며 독자 여러분들도 잠시나마 추억에 젖어보세요. 분명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요. 그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문자 한 통 보내세요. ‘당신이 있어 행복했던 한해였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해양대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있던 10월 어느날..

키다리 아저씨가 풍선을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

꼬마 아이에게 주고 있다.

사진촬영차 갔던 이날 체육대회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아 사진 한장.

꼬마는 키다리 아저씨가 풍선으로 무엇을 만드는 동안

한참이나 고개를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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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시험을 치거나 누구와 약속이 있어 길을 나설 때, 어릴 적 나는 항상 그때마다 손목시계를 사고 싶어 했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몇 번씩 보아야 했고, 시간 맞춰 약속장소에 기다리다 친구가 늦게 온다 싶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몇 시인지를 여러 차례 물어봐야 했다. 이러한 불편 때문에 나는 언제나 손목시계를 사고 싶어 했고 은색 휘황찬란한 빛을 손목에서 뿜어내는 이들을 부러워했었다.
 
간절한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는 듯 난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다 맞이한 대학생활. 처음으로 삐삐라는 것을 샀다. 이후 사람들의 손목에는 은색빛이 사라져가고 삐삐라는 것을 손목이 아닌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이제 약속장소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몇 시쯤 되었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항상 잔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는 수고로움이 생기긴 했지만 더 이상 손목시계의 존재는 필요치 않았다. 그때부터 난 손목시계는 손목을 조이는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고 대신 최신형 삐삐가 언제나 사고 싶은 항목 1순위로 새롭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참 편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대인관계가 차츰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나의 존재를 알리는 10자리의 숫자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족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이 작은 기계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세상과 이어주고 있다는 점은 24시간 나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에 온 음성메시지와 연락처를 보며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새벽의 일이 아침으로 이어지기 일쑤. 또한 나에게 볼 일이 있는 사람에게 내가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연락을 해야 하는 참 불편한 기계이기도 했다.

이러한 생활도 잠시, 사람들은 삐삐라는 것은 어느새 잊고 모두들 집안 무선 전화기같은 휴대전화를 밖에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용건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전화를 하기에 더 이상 타인의 용건으로 내가 공중전화로 가지 않아도 되는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생활은 삐삐와는 많이 달라졌다. 삐삐처럼 연락처나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일로 끝나지 않았다. 용무가 있으면 곧바로 전화가 왔으며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이 생기면 더 큰 문제가 되어 나를 끊임없이 찾았다. 나와 관계된 일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서울에도 부산에도 전국 어디든 공중전화가 없어도 나에게 용건이 있는 사람과는 말을 섞어야 했다.

 

가끔 사람들은 삐삐나 휴대전화가 없던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 가끔 나 역시 휴대전화 없이 지내고 싶은 욕구가 일 때가 있다. 하루라도 없이 지내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 물론 이 생각 역시 많은 사람들이 바라던 바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사라져간 삐삐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터치폰.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기계. 벌써 사람들은 그 작은 기계 속에서 소통을 시작했다. 실사진을 보며 정확하게 좌측, 우측을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제 갈길을 찾아가는 중학생의 모습을 봤을 땐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에게 휴대전화는 길도 찾고 모르는 사람과 전화 없이 소통도 할 수 있으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따분함을 잠재워주는 족쇄가 아닌 친구같은 존재로 보였다.

 

삐삐에서 스마트폰까지 불과 20년.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것을 이 작은 기계에서 느낀다. 스마트폰이라 부르는 이 작은 기계는 더 이상 휴대전화라 부르지 못한다. 전화의 기능은 수십 아니 수백 가지의 기능 중 한 가지일 뿐. 이제 사람은 이 작은 기계 속에서 세상을 살며 돌아다니며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며 지식을 채운다.

앞으로 어떠한 기계가 발명되고 개발될 지는 모른다. 하지만 점점 더 세상이 편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단지 시계의 기능에서 출발한 나의 욕구는 이제 휴대전화에서 어느덧 세상과 소통하는 기계를 원한다.

글|성두흔 기자

 

일그러진 30 계획

 

글|성두흔 기자

 

 

냄비 뚜껑에 연필을 대고 스케치북 위에 둥그런 원을 하나 그린다. 원 가운데에 연필을 찍고 원둘레를 향해 자를 대고 정성껏 여러 갈래의 줄을 긋는다. 그리곤 8시 기상 후 체조 및 세면, 9시 아침밥, 10시부터 12시까지 공부, 그리고 점심밥 한 시간 후 또 공부….(아마도 저녁 9시까지 공부와 휴식의 반복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후 공부는 공부대로 휴식은 휴식대로 분류별로 나누어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눈에 잘 띄게 크레파스로 색칠을 한 후 방문에 떡 하니 붙인다.

어릴 적 지키지도 못할 계획표지만 하루 24시간을 나누며 공부와 휴식, 그리고 또 공부라는 계획을 정하며 마음만은 편안했던 방학 생활 계획표. 계획표를 그리며 흐뭇했던 기억이 남아서일까 불현듯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 인생 계획을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 적이 있다. 그래서 30년은 공부하고 다음 30년은 공부를 바탕으로 일을 해 돈을 벌며, 마지막 30년은 번 돈으로 노후를 즐길 것이라는 일명 나만의 30 계획을 만들었다.


이러한 계획이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한 생활계획표 그리기보다 간단해서일까 아니면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해서였을까 가끔 멍하니 달력을 볼 때면 이 계획이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있다 튀어나오곤 해 가끔 나의 인생 좌우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대학 생활 초기 생각한 이 계획이 졸업을 할 즈음 불현듯 ‘나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보다는 공부를 몇 년 더해야 30 계획에 어긋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이 계획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나빠진 경제 상황과 취업을 아직 못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타협안이 30 계획에 힘을 싣지는 않았는지. 물론 서른 살이 되기 전 취업도 하고 돈도 벌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직은 돈에 목숨을 걸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공무원 공부와 토익 공부 등 지갑보다는 볼펜을 잡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맞이한 29세 어느 날 저녁.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교재를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빨간 노끈으로 책을 묶고 분리수거 장소로 몇 차례 왕복으로 책꽂이를 텅 비웠다. 허전함에 각 방에 흩어진 가족 앨범, 읽지는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서 사다 놓으신 생활 속 동의보감 7권 등 집안 곳곳에 잡학다식을 도와 줄 여러 가지 책들을 책꽂이에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정전 때를 대비해 사놓은 어른 종아리만한 양초 두 개를 올려놓으니 예전만큼 방이 꽉 찬다.

‘공부라는 것에 이제 미련을 가질 때가 아니다. 머릿속으로 들어올 것은 이제 책이 아니라 사회에 있을 것이다. 이제 서른 살이다.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날도 이제 그만이구나. 이제 일을 시작하자’


이때 불현듯 드는 생각이 바로 30 계획이었다. 뜻하지 않게 세운 계획에 나 자신도 모르게 맞춰가고 있는 듯했다.

아무튼 이때부터 공부보다는 통장을 불리는 일에 더 집중했다. 아니 지식을 공유한 책들이 없어서 일수도, 당장 상사에게 깨지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급하게 와 닿아서 일수도…. 그렇게 수년간 통장에 숫자를 차곡차곡 찍어나가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학창시절 보았던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출근하고 가끔 저녁에 얼큰하게 취해 귀가하고 모처럼의 휴일에는 지쳐 쓰러져 자다 가족들의 성화에 출근보다 더 힘든 외출을 하게 되는 그러한 어른으로…, 이제 취미는 급여 통장에 찍힌 금액의 숫자를 줄이는 일밖에 없는 듯했다.

 

어느 날 모처럼 차를 몰고 야외로 나가 아이웰빙(eye wellbing:좋은 것을 본다는 뜻의 신조어)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녁 먹을거리를 사러 대형마트에 들렀다. 새로 생긴 마트여서 그런지 이리저리 구경할 것이 많았다. 그중 세련된 인테리어로 입점한 서점이 눈에 띄었다. 새빨간 간판과 그 밑에서 정신없이 바코드를 읽고 있는 푸른 색 옷을 입은 점원, 그리고 그 앞에 빈틈없이 채워진 책들. 물건을 고르듯 카트를 몰고 습관처럼 서점으로 향했다. 이후 이책 저책을 마구잡이로 빼어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한 번에 주우욱 넘기며 손때만 묻히기를 여러 번.

 

지식, 지성인이란 대학생의 입에서만 담는 언어며 실제는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이기고 정당화 시키는 힘을 가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의 바탕이 30 계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류종이가 아닌 책을 만지고 있노라니 지식과 지성은 학교 밖에서도 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교복 속에 있던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턱대고 외국어 서적 한 권을 카트에 담고 계산을 해버렸다. 그리고 집에 와 제일 먼저 한 일이 장식장에 꽂힌 것들을 치우고 책을 꽂아 책꽂이로 변신시킨 일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펜을 잡는 일뿐이었다. 외국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그래서 수많은 과목 중 왜 배워야 하는지도 이해도 암기도 안 되었던 영어, 하지만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영어책을 내손으로 집어다 놓은 것이다.

 

고민이다. 서른 살 이후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갈 틈이 있을까. 30 계획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TOEFL이라는 알파벳 다섯 개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시험을 칠 생각도 영어단어를 다시 아침 저녁으로 외울 자신도 없다. 그래도 자꾸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눈으로 읽고 머릿속에 넣고 싶어진다. 30 계획을 바꿔야 할까.
그때 이후 책장에는 여러 권의 소설책과 교양서적이 자리 잡았고 수년 간 단 한번 불을 밝힌 양초가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다시 만든 계획이 바로 90 계획이다. 죽을 때까지 지식을 쌓고 돈을 벌고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을. 지금은 초등학교 문예반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출판사에서 글을 쓴다.

 

인생은 나누는 것이 아닌 하루 하루를 잇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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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베란다에서 놀때는 이렇게

 

 

 

 

 

 

 

 베란다에서 물을 틀고 30여분 동안 혼자 논 다윤이.

화분에 물도 주고 손도 씻고 다윤이 다칠까봐 꺼내놓은 식탁도 씻고..

한참 후 옷이 젖어 다른 옷 입혀달라고 할 때까지 계속해서 화분은 물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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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캐리어를 산 이후 처음으로 자전거 2대를 경주까지 업고 갔다. 처음이라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올 때는 걱정없이 왔다.

음... 튼튼하게 매달려 있어 경주에서 재미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해줘 참 좋았다. (왠지 일기쓰는 듯한..)

암튼 차에 훈민정음과 독도 지킴이 표어를 붙인 후 울산을 벗어난 첫 여행..

어찌보면 지저분 한 것 같지만 나로선 국문과 자부심과 한국인의 자존심. 그리고 여행의 즐거움을 즐기게 해주는 내 코란도가 좋다...

언제까지 탈 수 있을지는 모르니만 애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타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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