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곳 진주성

 

“임진년 후퇴는 진주성 공략 실패에 있다. 철저히 공략하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너지면 전라도와 서해를 내준다. 철통같이 막아라” - 김시민 장군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봤을 수학여행. 놀이공원만 3일 줄창 있어도 부족할 시간 당시엔 깊은 산속 절을 찾아 혹은 멋있어 보이지 않는 건물 앞에서 단체로 얼굴만 내민 채 왜 사진을 찍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수학여행의 기억은 숙소에서 보낸 시간만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물론 어디서나 우등생임을 자처하듯 펜과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열심히 기록하는 학생도 꼭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에 와서야 눈만 감지 말자는 생각에 임했던 단체사진의 배경이 너무나 훌륭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 중 하나로 목적지에 대한 사전지식의 유무가 아닐까.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서생포 왜성 다음으로 찾은 진주성 역시 알면 알수록 발걸음을 쉬 떼지 못하는 곳이다. 수백년간 전투를 치러오면서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만 수만 명에 이를 정도로 아픔을 간직한 곳 진주성. 현재는 공원으로 꾸며져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좌 : 김시민 장군 동상, 우 : 북장대로 올라가는 길

 

공원처럼 꾸며진 성내

 

임진왜란의 아픔을 품고 있는 성내(城內)
진주성은 둘레 1.7km로 성내에는 임란시 의병을 모아 싸운 제말과 제홍록 장군의 충의를 새긴 ‘쌍충사적비’, 진주성에서 준설한 제장, 군졸들의 충의를 새긴 ‘촉석정충단비’,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전공을 새긴 ‘김시민전성각적비’, 7만 민, 관, 군의 충혼을 위령하기 위한 ‘진주성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김시민 장군과 함께 임란 때 함께 순절한 분의 신위를 모신 ‘창열사’ 등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곳으로 이곳저곳 볼거리가 상당히 많이 있다.
성내로 향하눈 문은 촉석문, 서문, 공북문 총 3개로, 이중 2002년 준공된 공북문은 진주성의 주된 문으로, 임진왜란 시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장군 동상이 문 뒤에 세워져있다. 2000년 1월 1일 새천년 첫 달 첫 날에 세워진 동상은 그 기념비에 ‘나라와 겨레를 있게 한 그 매운 충절을 만세에 전하고자 함’이라 새겨 진주성의 존재가치를 한번 더 되새기게 한다.


동상 옆에 위치한 북장대(도문화재 자료 제4호)는 군사건물의 모범이라 할 만큼 잘 건축된 망루(망을 보거나 먼 곳을 보기위해 세운 건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 함락으로 부서진 것을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장대 외에도 진주성 안에는 예로부터 진주관찰부, 경상남도관찰사 감영, 경상남도 도청이 존재했었지만 일제시대 모두 헐렸으며, 1969년 진주성복원사업을 시작한 이래 많은 건물들이 중수 또는 철거되어 현재는 진주성 공원으로 불릴 만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꾸며져있다.
성내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 유물들이 많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인 국립진주성박물관이 있다. 이곳엔 임진왜란실, 기획전시실, 3D입체영상관 등이 있으며, 보물 제885호 현자총통과 이순신 장군의 친필 서한 등 3,500여점이 소장돼 있다.

 


천자총통

 

촉석루로 성벽을 따라 길을 걷다보면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총통(천자, 지자, 현자)이 실물 그대로 만들어져 진열돼 있다. 이 포는 동차에 장착하여 사용하였는데 길이 2.3m의 대장군전과 새알처럼 생긴 철환 100개를 발사할 수 있으며, 사정거리가 천자로 천자총통은 천자(약 900보, 1,136m)를 날아간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총통이 진열된 곳을 지나면 걸어다니느라 흘린 땀을 식히기에 그만인 진주성의 대표적인 명승지 촉석루가 보인다. 남강은 물론 주변 경치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어 임란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평상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과거시험을 보던 장소로 이용 되었던 곳이다. 현재는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촉성루 바로 밑으로는 의암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으며, 우측에는 논개의 사당인 의기사가 있다.

 

 

좌측상단 : 예전 논개 영정, 우측상단 : 최근 봉인된 논개 영정

 

의암


한때 사당안에 있는 논개의 영정을 두고 진주 시민들 사이에선 친일 부역 화가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논개의 민족혼을 훼손하므로 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시 그릴 경우 당시의 기품과 우아함을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영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결국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전통영정기법으로 과학적인 고증과정을 거쳐 그린 영정으로 교체됐으며, 논개의 열 손가락에 가락지가 선명이 그려진 이 영정은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돼 2008년 5월 23일 봉인하였다.
촉석루 밑 의암은 높이와 너비가 약 3m 정도 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촉석루 쪽 암반과 붙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절벽에 붙으면 나라에 큰 재앙이 난다는 전설을 가져 위(危)암이라고 했다가 논개로 인해 의(義)암으로 바뀌었다.

 

 

촉석루

 

진주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발발 후 왜군은 전라도 곡창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왜장 나가오카가 3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격해왔고, 이에 맞서 김시민 장군이 불과 3,800여명의 관, 군, 민이 합쳐 6일간의 사투 끝에 승리한 전쟁이다. 훗날 이 전쟁의 승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차 진격 때 진주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때문에 보급로 역할의 전라도 곡창지대 확보와 서해로(路)로 진격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조선 점령의 주된 실패 이유로 꼽았을 만큼 진주성전투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진주에선 매년 진주남강유등축제가 펼쳐지는데 이는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유등을 띄운 것이 효시가 되어 7만 병사와 사민의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장수와 왜장 갑옷

 

찾아가는 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15, 25, 37, 38번) 10분
승용차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서 서진주IC로 나와 10분거리

진주성 관람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300원이다. 진주박물관 올 12월까지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진주박물관 내 3D 입체상영관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시에 시작해 14분간 상영된다. 문의 : 진주성 관리사무소(055-749-2485)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올 여름 휴가! 한국관광공사에 맡긴다
관광공사 추천 캠핑여행 & 여행상품

 

한국관광공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캠핑여행”이란 테마를 중심으로 ‘7월의 가볼만한 곳’ 4곳을 선정했다. 또 다양한 여행욕구를 충족시키고 국내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우수여행상품으로 5개 여행사의 8개 상품을 선정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놀지 걱정이라면 이번 여름 휴가는 관광공사에 맡겨봄이 어떨까.

 

가족과 함께 하는 캠핑여행
텐트 안에 앉아서 동해바다의 낭만에 취한다

화진포해수욕장과 더불어 강원도 고성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수심이 낮고 백사장이 깨끗하며 최근 오토캠핑장이 들어섰다. 7번 국도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으며, 캠핑장 바로 앞이 송지호해수욕장 해변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주차장, 텐트촌, 야외테이블, 급수대, 샤워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캠핑장 남쪽 구역에 일렬로 늘어선 10채의 통나무집도 인기가 높다. 자그마한 호수와 야외무대, 죽왕운동장도 캠핑장을 이용하는 피서객들에게는 해변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주변에는 송지호철새관망타워, 왕곡민속마을, 가진항, 화진포호수 등 둘러볼 명소도 풍부하다.
위치 :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문의 :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33-680-3361

 

유목민의 꿈이 이뤄지는  방화동 가족 휴양촌
전국 30여개 오토캠핑장 중 우리나라 최초의 오토캠핑장은 전북 장수의 방화동 가족 휴양촌이다. 용소에서 흘러내리는 사행천을 따라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방화동 가족 휴양촌은 20년 전통을 자랑한다. 차를 세우고 바로 옆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구획이 정리되어 있으며, 취사장, 평상, 물놀이장, 잔디밭, 지압로, 삼림욕장, 등산로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전북 장수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스님의 생가가 있고, 왜장과 함께 순국한 주 논개의 생가와 사당은 물론, 원형대로 보존된 장수향교 등 교육적 방문지가 많다. 국제 규모의 승마장에서 승마체험도 즐길 수 있어 아이들과의 오붓한 여행에 적합하다.
위치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문의 : 장수군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312, 방화동 가족 휴양촌 063-353-0855


눈길마다 비경이 펼쳐지는 단양 여행
충북 단양에는 수려한 자연 속에 소선암캠핑장, 다리안캠핑장, 황정산캠핑장, 남천야영장, 천동야영장 등 잘 정비된 캠핑장들이 구석구석 자리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곳은 바로 7월 1일 개장한 소선암캠핑장. 텐트 바로 앞에 차량 주차가 가능해 오토캠핑장으로서도 손색없는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캠핑장 뒤쪽 2시간 코스의 두악산 등산로에서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금강산 봉우리를 축소해놓은 듯한 절경의 사인암, 세 개의 봉우리가 남한강에 유유히 떠있는 도담삼봉과 석문, 그리고 옥순봉과 구담봉까지. 2박 3일의 일정도 짧게 느껴질 다양한 볼거리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위치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문의 :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3150

 

은구슬이 쏟아지는 폭포의 향연, 금원산 자연휴양림
금원산은 2.5km의 유안청 계곡을 따라 미폭, 자운폭포, 유안청폭포 등 다양한 형태의 폭포와 소, 담이 이어지며 바위마다 이끼가 잔뜩 끼여 있어 사진작가들이 아름아름 찾는 명소다. 자운폭포에서 숲속교실까지 계곡 양편에 방갈로와 야영테크가 이어지는데, 도로와 가깝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오토캠핑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월성계곡은 계곡이 길고, 너럭바위가 많아 한적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다. 무릉도원 수승대에서는 소나무를 등에 인 거북바위를 볼 수 있으며, 거창국제연극제 기간의 고가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정온고택도 들러볼 만하다.
위치 : 경남 거창군 위천면
문의 : 거창군청 문화관광과 055-940-3183

 

 

이달의 추천 여행상품

울릉도 독도 옛길 트레킹 여행
울릉도 천혜의 비경으로 숨겨둔 마지막 미개발 지역, 태하 등대에서 일몰전망대로 이어지는 ‘옛길 트레킹 코스’를 여행사의 안내로 구석구석 다녀볼 수 있다. 여름 특가로 저렴하게 울릉도를 다녀올 수 있는 좋은 기회다.(한국드림관광 02-849-9013)

 

아! 보석같은 섬, 승봉도
작지만 아름다운 서해 섬 승봉도에서 구석구석 경관이 멋진 섬 투어를 함께 하고, 선택적으로 낚시체험, 어부체험, 갯벌체험 등도 가능하다. 저녁에는 승봉도 내 동양콘도에서 아름다운 일몰과 야경을 즐기고, 다음날에는 이국적 해변의 사승봉도에서 가족들과 함께 해수욕을 하며 시원한 여름추억을 남긴다.(현대마린개발 1600-0513)

 

신나는 여름! 중도유원지, 납실천 계곡 물놀이 여행
중도는 춘천 의암호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으로 수상레포츠의 천국이다. 자전거 산책도 좋고, 개별로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수상스키 등 레저시설을 골라 타는 재미를 만끽해보자. 지친 체력을 춘천닭갈비로 보충한 후, 오후에는 납실천 계곡에서 한 번 더 물놀이를 즐기는, 하루 종일 시원한 여행이다.(여행스케치 02-701-2506)

 

월악산 송계계곡 물놀이와 사과양초 만들기
사과의 고장 충주에 걸맞게 재래시장을 방문하면 사과국수, 사과주, 사과한과 등 사과로 만든 특산물이 가득해 쇼핑이 즐겁다. 과수원에 들려 사과향 가득한 향초도 기념품으로 만들어 본다. 월악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진 송계계곡에서 시원한 탁족을 즐기며 혀행의 피로를 푼다.(여행스케치)


무지개언덕 허브빌리지와 한탄강 유원지 물놀이, ‘별빛답사’ 장흥 송암천문대 여행
경기도 연천의 한탄강변에서 자갈밭, 모래밭을 거닐며 산책도 즐기고, 물놀이를 즐기며 여름을 만끽하고, 계곡의 기암괴석도 즐긴다. 송암천문대는 한국관광공사에서 6월의 꿈결같은 야간여행지로 추천한 곳으로 인기가 높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천문대에는 첨단우주체험기기로 가득해 천체 관측이 가능하고, 별자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여행스케치)

 

영산강 황포돛배와 완도, 청산도, 보성 녹차밭, 진도 KTX·버스 여행
‘2008 광주전남방문의 해’를 맞아 남도의 하이라이트를 둘러볼 수 있도록 한 여행이다. 전남에서 옛 정취를 살려 복원한 황포돛배 체험은 영산강을 따라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운행된다. 최근 슬로시티로 선정된 청산도와 예술의 고장 진도도 방문한다. 이 외에 황포돛배 체험과 함께 보성녹차밭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상품으로 남도의 향취를 따라 떠나는 버스여행이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을 제공한다.(아름여행사 02-722-0419)

 

서남부권 일주
여름휴가이기에 가능한 일정! 남도를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는 여행이다. 전주경기전, 변산반도 내소사, 담양 죽녹원, 지리산 화엄사, 하동 송림, 거제와 통영 등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유명관광지를 구석구석 둘러본다. 집보다 더 편한 특급호텔에서 숙박과 남도한정식, 참게탕 등 지역 별미음식으로 ‘휴식’ 그 자체인 여행을 즐겨본다.(롯데JTB 1577-6511)

 

□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 취재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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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해수욕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
그곳에 조상의 혼이 숨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왜성(矮城)
왜(矮)국의 침입이 잦았던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전, 임진왜란(1592)을 전후로 울산은 왜군이 경주, 안동, 문경 등 내륙으로 진군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쓰시마해협을 건너온 왜군은 울산, 부산 등지에 차후 자국에서 건너올 배들의 손쉬운 정박과 언제 있을지 모를 공격과 방어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서생포왜성(문화재자료 제8호)이다.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인 1592년(선조 25년) 구마모토 성주인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성으로, 성 주변 해자(垓字 : 적과 동물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포함해 총 면적 151,934㎡, 동서 길이 2.5km, 성벽 높이 5~8m(현재 2~6m)로 우리나라에 있는 왜성 30여개 중 가장 큰 성이다.
일본의 사료엔 봉화성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 구마가와성을 연결하는 봉화대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서생포왜성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직으로 높이 솟은 성벽에 동서남북으로 큰 성문이 있는 모습이 아니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외곽으로 6m의 성벽을 60도 정도 기울게 해 계단식으로 돌을 쌓았으며,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눠져 있는 특이한 구조다. 이는 여러 곳에서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형태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남문의 일부 훼손을 제외하면 성곽의 형태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16세기말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층층이 쌓인 조상혼

차를 몰고 ‘외성내의 길’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차를 몰고 오를 수 없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차에 내려 먼 산을 바라보니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봉긋하니 솟은 망루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왜성은 해발고도 133m, 가파른 곳에 위치해 있다. 멀리서 층층이 쌓인 돌들을 보니 ‘산아래부터 정상까지 이 많은 돌들을 어떻게 쌓았을까’하는 궁금해진다. 전쟁준비에 바빴던 왜군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가 간행한 『경남의 왜성 유적』에 따르면 축성 때 동원된 인원만 약 10만 명이라고 한다. 물론 왜군 10만 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모든 돌들은 약 1km떨어진 곳에 위치한 만호진성을 비롯 주변 석재를 헐어 만든 것이다. 때문에 현재 만호진성은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남측의 성벽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니 성문이 없는 제3성 입구가 나타난다. 울주군에서 간행한 서생포왜성 간행물에는 왜성의 출입구는 총 11개였다고 표시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입구를 둔 이유는 임진왜란 때 세워진 성으로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보면 성문안으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전쟁시 적군의 공격을 지체시키고 아군의 공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서생포왜성의 입구 형태는 총 4종류로 ㄷ자형, ㄹ자형, ㄴ자형, 그리고 직선형이 있다. 
제3성을 지나니 멀리서 보았던 망루대가 보인다. 그 위에 올라서니 이름 그대로 멀리 진하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나중에 들은 사실이지만 현재 진하해수욕장 인근 주거지는 바다였고 현재보다 해수면이 높았다고 한다. 때문에 임진왜란 시 선착장이 있던 곳은 우거진 나무와 바위만 가득할 뿐 선착장의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다. 망루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높이 6m가량의 높다란 성벽이 나타난다. 어찌 보면 기어오를 수도 있을 만큼 약 60도 가량 사선으로 쌓아올려져 있다. 이 높다란 성벽을 지나면 비로소 내성 정상이 나타난다.
땀이 범벅이 된 채 올라선 정상, 탁트인 공간 뒤로 천수각이 있던 장소가 보인다. 임진왜란에서 패배한 왜군은 이곳에 지어진 모든 건물을 파괴하고 떠났기 때문에 천수각 역시 석단만이 남아있다. 현재는 이 석단 위에 3~5층 규모의 천수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생포왜성이 가지는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이곳 천수각터로, 사명당(임진왜란 시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승려)과 적장 가토 기요마사 간의 4차례에 걸쳐 회담을 이뤄졌던 곳으로 사명당은 적의 본부에서 회담을 하며 적진을 살폈다고 한다.

 

 

구마모토시의 관광상품
정상에 오르면 방명록이 있다. 누가 다녀갔나 호기심에 몇 페이지를 뒤적이니 일본어가 보인다. 문화재관리인 최인수 씨는 구마모토 시민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이라 설명해준다. 우리에겐 왜적 장수로 기억되는 가토 기요마사, 이곳에 들른 일본인들에겐 어떠한 조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을까. 1965년 한국과 일본이 우호협력관계가 된 이후 일본인들은 이곳에 벚나무를 심어 벚꽃이 만개할 무렵 관광을 온다고 한다. 특히 왜장 가토가 살았던 구마모토 시에서는 주민들의 한국 필수 관광코스라고 한다. 400년전 그들의 선조가 우리 조상의 피땀으로 만들어 놓은 성과 후대에 심어 놓은 벚나무를 생각하니 이 큰 돌들을 1km나 옮긴다고 피땀 흘렸던 우리 조상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장군수(천수각 주위에 만들어진 성내의 우물), 누각(병사가 살며 무기 등을 보관하던 장소) 등을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돌아다녀도 조상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직도 건재하게 쌓여있는 성벽들 뿐이다. 얼마나 잘 지었던 것일까. 왜장 가토는 철군시 성을 쌓는데 동원된 이곳 주민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한때 한 방송사에서 성(性)이 ‘서생’으로 구마모토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몇 명을 초청했던 일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이 성을 쌓고 끌려간 선조들의 핏줄이었던 것이다.
현재는 유원지로, 또 초등학생들의 견학코스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서생포왜성. ‘이곳은 벚꽃이 일품’이라는 방명록의 글귀보다 ‘뼈아픈 역사와 돌 하나하나 어루만졌을 조상들을 생각난다’는 글귀를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며 성을 등지고 내려온다.

 

주변에는…
진하해수욕장 : 백사장을 둘러싼 송림과 명선도를 볼 수 있다.
간절곶 : 동북아시아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
외고산 옹기단지 :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옹기마을.
서생란 하훼단지 : 선물이나 장식으로 제격인 난들이 가득하다.
Tip
금토일9시~16시30분까지는 문화관광해설자가 있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취재/사진 : 성두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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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부터 시작되는 추억

 


“6·25가 터지던 해 군에 입대를 했거든… 그렇게 40여 년을 군 생활하고 육군상사로 17년 전 제대를 하니 뭘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 그래서 배운 기술 중 하나야. 이젠 우산수리 맡기는 사람도 없고.”

우산 수리점을 찾기 힘든 요즘, 어렵사리 신정시장 내 구두수리점에서 만난 이기섭(77) 할아버지. 더이상 우산 수리는 안 하신다며 잠깐 실랑이를 벌였던 탓일까, 말문이 트인 그는 우산 수리를 하며 손자뻘 되는 손님에게 친숙한 듯 옛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한참을 들으니 그의 옛 추억이 6·25로 시작해 군 제대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 군대는 술안주로 잠깐 나오는 그러한 군대 얘기가 아닌 인생 전부인 듯했다. 그의 옛 추억 전부를 만들어버린 6·25, 어느새 말끔히 고쳐진 우산을 건네는 모습에 문득 ‘그의 추억이 있어 우리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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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공시생’ 마지막이기를…

 

 

신일중학교에서는 840명의 수험생들이 행정직 9급(일반) 시험을 치렀다. 사진은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수험생들.

‘2008 제1회 울산시 지방공무원 임용 필기시험’이 지난 24일 울산공업고등학교, 신일중학교, 울산서여자중학교, 학성중학교 등 4개교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전체 선발인원 84명 모집에 4,084명이 응시해 평균 49:1의 경쟁률을 보였다. 가장 많은 응시자가 몰린 일반행정직 9급은 선발인원 47명 모집에 2,812명이 몰려 6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꾸준히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번 시험에서는 단 한 명을 선발하는 세무직이 250대 1의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한편, 공무원 선발 인원 감축과 공무원도 더이상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는 인식이 조금씩 커지면서 지난해 51명 모집에 4,450명이 출원, 87대 1을 기록한 것에 비해 다소 하락한 경쟁률이다. 이번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는 6월 20일이며, 이후 7월 16~18일에 면접시험이 치러진다. 최종 합격자는 7월 30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 취재/사진 성두흔 기자

 살어리 살어리랏다 황토집에 살어리랏다

나무와 황토로 꿈을 이루는 사람들

언젠가는 나도 황토집을 지어 살겠다며 뙤약볕아래 모자 하나 눌러쓰고 땀으로 뒤범벅이 됐지만 미소만은

 꿈을 짓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밝게 띄고 있던 ‘황토집짓기’ 1기 수강생들.

좋은 주택에서는 이번 1기생 수료 후 올 9월초쯤 2기 수강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신문, 방송을 보다보면 학군이 좋고, 장차 주변이 계속 개발될 예정으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는 아파트 분양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양광고 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새집증후군’이라는 단어다.

현대식 주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철근과 콘크리트부터 스티로폼, 석면, 페인트, 그리고 포르말린같은 마감재 등이 이러한 새집증후군을 유발하는 유해물질들이다. 다시말하면 새집에 들어가 산다는 기쁨과 함께 이러한 걱정도 더불어 않고 살게 되는 것이다.
몇 해전부터 황토주택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걱정의 표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 황토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머릿속으로만 그릴 뿐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도 평소 이러한 생각을 주말이나마 실천하며 조금씩 조금씩 황토집에 대한 꿈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곳을 찾아가봤다.

 

 

학구열이 뜨거운 날씨보다 높다

 


한적한 도로길을 지나다 AI 방역이 한창인 곳과 맞딱드렸다.
“어르신, 여기 황토로 집을 짓고 있다는데…”
“저기 마을 회관 옆으로 가보소. 아침부터 여럿이 모여 일하고 있더만 아마 거긴가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 중 한 분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킨다.
황토집을 짓는 공사가 8주째 진행되고 있는 울주군 청량면의 한적한 한 시골마을.

점심 무렵 도착한 현장에는 여기 저기 자로 잰 듯 잘려진 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그 사이로 10여 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다니고 있다. 왼쪽 가슴에는 이름표, 허리에는 줄자부터 각종 측정기구까지 주렁주렁 매단 것이 열이면 열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이다.
한쪽에선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느라 분주하고 또다른 한쪽에선 줄자를 이리저리 놀리며 잘라낼 부위를 표시하느라 날리는 톱밥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재고 자르고만 할 뿐 이 많은 나무에 으레 있을 못질 소리가 들리지 않아 궁금해 하던차 이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잘려진 나무를 서로 꿰 맞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순간 옛날 이순신 장군이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이리저리 꿰맞춰 커다란 포의 반동을 이겨내는 배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전통에 현대 건축 방식을 가미한다
현대식 건축물에 많이 쓰이는 쇠못이나 콘크리크를 옛날 선조들이 살던 집에는 이를 나무와 황토가 대신한다. 황토집짓기 강좌 역시 전통방식을 기본으로 현대건축방식을 가미하고 있어 일반 공사장에서 흔히 보이는 철근보다 일자로 쭉 뻗은 나무들만이 보일 뿐이다.
차용업 대표는 “콘크리트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대들보를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 대들보가 서는 자리에는 콘크리트가 조금 들어간다”고 설명한다. 콘크리트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현대식 황토집인 것이다. 황토집을 짓는데 대들보와 도리 등을 잘라 끼워맞춰 집의 뼈대를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나무만 쓰인다. 기본 뼈대가 완성되면 신벽치기(기둥과 기둥사이에 콘크리트 대신 황토를 채우는 과정)와 구들놓기, 설비공사(위생설비, 하수관 위치, 수도, 전기를 놓는 작업) 등이 이어진다.
간단할 것 같은 이러한 과정에는 백 가지가 넘는 기술이 요구된다고 한다. 때문에 강의 역시 여러번 반복을 통한 숙련을 키우기보다는 강의가 진행되는 13주 내내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기술 전수에 초점이 맞춰 진행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자

 


차용업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황토집에 살고 싶어 이러한 집짓기 과정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지만 일상에 쫓겨 주말을 모두 이곳에서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차 대표의 말처험 수강생들의 표정은 ‘언젠가는 황토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사실에 이미 절반은 꿈을 이루었다는 만족감이 가득하다.
이왕락(46. 학원강사) 씨는 “토요일은 학원수업을 빼고 이곳에서 하루 종일 보낸다”며 “평소 관심 있었던 일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드물기 때문에 주말에는 꼭 이곳에 나와 수업을 듣는다”고 말한다.
이는 한 수강생이 아닌 대다수 수강생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기회가 있을 때 배워야 생각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차 대표는 “생각에서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망설이는 것 중에는 사전지식이 없다거나 공구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걱정 때문”이라며 “이에 13주 과정의 강좌기간 중 1~2주간은 기본 지식과 공구 사용법 등을 익히는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어 초보자들도 쉽게 강좌를 따라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13주 동안 기본 기술을 다 익혔다고 혼자서 집을 뚝딱 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 황토집 특성상 대들보를 잘못 놓는다거나 치목을 잘못한다면 공기는 더욱 길어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13주의 과정을 다 마치고도 차후 기수별 모임을 만들어 서로 품앗이로 도움을 주며 황토집을 짓는 것이 이 분야에선 일반적인 모습이다.
1년전 차 대표가 진행한 황토집짓기 강좌를 수강했던 이갑영(60. 황토집짓기 모임 회장) 씨는 현장 실습이 있는 날이면 이곳을 방문한다. 그는 “조만간 집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어 복습차원에서 온다”며 “매번 방문 때마다 부족한 점도 배우게 돼 내집 설계에 많은 보탬이 된다”고 말한다.

13주간 황토집짓기 과정을 배운다
톱 한 번 안 잡아봤다며 강좌 신청도 하기 전에 지레 겁을 먹는 이가 있다. 하지만 이곳 수강생 역시 나무를 잘라본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의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13주 과정 중 1~2주는 기초를 3주차부터 본격적으로 작은 나무를 가지고 대들보나 보, 도리 등에 적용되는 모양을 잘라보며 공구의 사용법과 나무를 다루게 된다. 보통 3~4주 과정이 지나면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익숙해지고 간단한 책상같은 것은 나무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된다고 한다.
4주차부터는 본격적으로 기둥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목조 건축물의 기술 중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인 사개맞춤(목조 뼈대집을 지을 때 목수의 기술 중 하나로 기둥과 보, 도리 등을 끼워맞추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5주차부터는 터 다지기, 보·도리·대들보·받침장여 치목 등 난도가 높은 과정이 진행되며 13주의 과정이 마무리 된다.

좋은 주택 차용업 대표
울산매일, 울산능력개발원 전통흙집짓기 시민대학 강사 역임, 좋은 주택 대표로 20년 넘게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은 처음으로 좋은 주택의 이름을 내걸고 황토집짓기 1기 수강생을 받아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1기생 집짓기 과정은 인터넷(http://cafe.daum.net/goodzip1) 상 회원들의 카페에 공개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052-227-8582번이나 홈페이지(www.goodzip.com) 문의하면 된다.

글/사진 : 성두흔(corea96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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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소 값은 자꾸 떨어지는데 사료값은 계속 오르고… 소 한 마리 2년간 키워 팔면 20~30만 원 남으니, 이제는 송아지 생길까 겁나.”
박대호(63·북구 시래마을) 씨는 아들과 함께 소 260두를 키우고 있다. 반 이상 줄어든 수익에 사료값은 배 이상 올랐으니 송아지 생길까 겁난다는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물론 소 마릿수를 줄여서라도 자구책을 마련하라는 등 주변의 권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물 주기만을 기다리는 소를 바라보면 흑자, 적자라는 수학적 개념은 소 입속으로 들어가는 여물과 함께 이내 사라진다.
이처럼 평생을 소와 함께 지내며 ‘한우’라는 브랜드의 명맥을 이어가는 그와 같은 농부들이 있기에 우리 밥상엔 아직 한우가 오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울산교차로신문사 글/사진 성두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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